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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9 - 월 29일 면사무소에서 뽕나무 묘목을 손질하기 위해 면민을 동원하는 일이 있었 다. 뽕나무 육성은 일제의 농업 정책의 차원에서 강제적으로 추진되는 일이었 다. 일제는 쌀농사에 중점을 두면서도 면화와 제사업의 육성도 정책적으로 추 진하였다. 그에 따라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다. [경과] 덕곡면 3·1 만세시위는 3월 29일 면사무소 주도로 뽕나무 묘목을 손질하던 중 동원에 나온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 사는 배기석(裵基奭)이 면민 20여 명 이 지켜보는 앞에서 만세 시위를 펼치면서 시작하였고, 면민들이 이에 호응하면 서 이루어졌다. 이에 덕곡주재소 소속 경찰들이 출동하여 면민들은 해산되었고 , 배기석은 검거되었다. [의의와 평가] 덕곡면 3·1 만세시위는 고령 지역에서 두 번째로 일어난 만세 운동으로서 역 사적 의의를 갖는다. 다만, 만세 시위가 조직적이거나 계획적이지 못해 운동의 영 향력이 크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이후 고령 지역에서 만세 시위운동이 확산되 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고령군지』 (고령군지편찬위원회, 1996) 『고령문화사대계』 1-역사편(고령군 대가야박물관·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 2008)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우곡면 3·1 만세시위(牛谷面 3·1 萬歲示威) -분야 : 역사/근현대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대곡리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1919년 4월 초순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