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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6 - ● 파리독립청원운동(-獨立請願運動) -이칭/별칭 : 파리장서사건,유림단독립청원운동,제1차 유림단 사건 -분야 : 역사/근현대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1919년 고령 유림계가 참여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郭鍾錫)의 문인 윤충하 (尹忠夏)는 서울의 만세 시위운동 상황과 파리강화회의 등 국내외 정세를 설명 하고,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작성, 곽종석이 대 표로 나서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곽종석은 김창숙(金昌淑)과 상의하였는 데, 김창숙은 독립선언서에 민족 대표로 유교 대표가 빠졌으므로 국제 활동의 사명은 유림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활동에 착수하였다. [목적] 김창숙은 1919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 하고 국제 여론을 조성하여 한국의 독립을 인정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러한 국제적 활동이 실패를 하더라도 한민족의 민족 독립에 대한 염원을 세계 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일제에 발각되는 경우 구속 소동이 일어나게 되 어 안일에 빠져있는 유림을 각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경과] 김창숙은 김정호(金丁鎬)와 추진 방안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곽종석을 중심으 로 한 영남 유림을 대상으로 서명 작업을 전개하는 동시에 운동자금의 준비에 착수하는 한편, 파리장서의 문안 작성을 장석영(張錫英)에게 맡겼다. 곽종석 을 중심으로 서명 작업과 자금 모금을 하여 상경한 김창숙은 김복한(金福漢 ) 을 중심으로 충청도 유림도 같은 취지에서 문안을 만들어 임경호(林敬鎬)를 파 리로 파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았다. 이에 김창숙은 임경호와 논의 하여 서명자로 김복한 등을 추가하고 자신이 대표로 파리로 가게 되었다. 독립청원서에 서명한 전국 유림 대표 137명 중 고령 출신의 유림은 곽수빈(郭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