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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3 - 한편 각 면 단위로 지회가 설치되었으며 당시 활발하게 활동한 지회는 고령청 년회 개포지회[1925. 11. 11]·안림지회[1925. 12. 27]·다산지회[1926. 1. 6] 등 이었다. 이후 이들 지회는 개포청년회[1926. 3. 2]·안림청년회[1926. 1. 4]·다 산청년회[1926. 3. 5]로 개편되었으며 1927년 4월에는 덕곡청년회가 창립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26년 3월 27일 고령 지역 각 청년 운동 단체를 아우르는 고령청 년연맹이 결성되면서 그 하부 조직으로 재편성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노동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의 문화 운 동과 토론회, 강연회 등의 개최를 통한 실력 양성 운동과 관련된 사업과 업무 를 수행하였다. [활동사항] 고령청년회는 1920년 11월 학령 아동의 구제와 문맹 퇴치를 위한 노동 야학 과 공립학교 부설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노동 야학의 교과목은 한글·한문·일어 · 산술 등이었고, 교사는 이상봉·이정근·유우식 등 청년 회원을 비롯하여 공립보 통학교 교사 김명덕(金明德)·노정용(盧靜容) 등이었다. 강습소의 지식 보급 노 력으로 일본인 경찰서장 요시무라[吉村登]도 강습소 신축을 위한 의연금 모집에 동참하였고, 주민들과 각종 단체 등도 야학이나 강습소의 설립·운영에 적극 동참 하였다. 그 결과 우곡면 객기동교회 장로 홍재우·구성서(具聖書) 등이 야학강습소를 설 립하였고, 고령면 내 기독교회의 가정부인을 대상으로 한 여자야학도 설립되어 운영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도진흥회 고령지부가 각 면 단위로 학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야학 활동은 봉건 제도의 폐습과 문맹을 타파하 고 농촌 청년의 계급적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목적을 삼았다. 고령청년회는 창립 이래 매월 두 차례 이상 토론회와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 토론회와 강연회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계몽을 목적으로 유학생 학우회나 각지 청년 단체의 연사를 초빙하여 개최하였다. 1924년 4월 대구청년회·현풍 청년회·합천청년회·초계청년회·해인청년회 등과 연합 대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타 지역 청년회와의 유대관계를 도모하기도 하였다. 고령청년회는 1922년 11월 민립대학설립운동이 전개되자 의연금을 모집하는 등 적극 동참하였고, 1920년 8월 평양에서 처음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전개된 조선물산장려운동에 부응하여 금주 단연을 결의하는 등 실력 양성 운동에도 적극 호응하였다. 그 외 신간회 고령지회의 설립도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