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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2 - 참고문헌 :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고령군지(1996년) ●최영석(崔榮碩)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점석(点碩)이고 호는 낙포(洛圃)이다. 아버지 용 주(瑢柱)와 수천(壽天)의 딸인 경주김씨(慶州金氏) 사이에서 1906년 12월 9일 에 태어났다. 초대 우곡면(牛谷面) 면의회(面議會) 의원(議員)을 거쳐 우곡단위 농협조합장(牛谷單位農協組合長)을 역임하였다. 낙동강 연안(沿岸)에 자리잡은 우곡면 하부지역(下部地域)은 저지대(低地帶)로 매년 여름철 우기(雨期)가 되면 낙동강 강물이 범람(氾濫)하여 농경지(農耕地)가 침수(浸水)되어 농작물에 엄청 난 피해를 입혀 농민들이 생활고(生活苦)에 시달리는 상습침수지역(常習浸水地 域)이었다. 1957년 기성회장(期成會長)을 맡아 몽리민(蒙利民)을 설득하고 협 조를 구하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하여 1962년 약 8km에 이르는 낙동강 연안의 제방(堤防)를 축조(築造)하여 항구적(恒久的)인 수해안전대책(水害安全對策)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67년 경지정리사업(耕地整理事業) 추진위원장 (推進委員長)에 선출되어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경지정리(耕地整理)의 필요성 을 건의(建議)하여 자연부락 기준 11개리(동) 총경지면적 300ha에 경지정리(耕 地整理)와 수리시설(水利施設)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완공함으로써 영농의 편 의 및 기계화와 함께 단위당 생산량의 증가를 도모하는데 공헌하였다. 196 8 년 8월 15일 지역사회개발(地域社會開發)과 지방행정수행(地方行政遂行)에 적 극 협조한 공로(功勞)를 높이 치하(致賀)하여 내무부장관(內務部長官)으로부터 감사장(感謝狀)을 수여받았다. 또한 1969년에는 농업의 생산력 증강과 지역 농 민의 생활향상을 도모하고자 전기사업(電氣事業)을 추진하여 완공함으로써 지 역민들이 보다 밝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 살기 좋은 내고장 건설에 열정과 헌신적인 자세로 진력(盡力)한 낙포공(洛圃公)의 공적을 오래토록 기리 고자 생전에 지역민 311명이 그의 호를 딴 ‘낙포회(洛圃會)’를 결성하였다. 매 년 8월 20일경 추모행사를 가지고 있으며 1984년 11월 동지일(冬至日)에 고령 군 우곡면 봉산1리 마을 입구 도로변에 ‘낙포공(洛圃公) 공덕비(功德碑)’를 세 워 업적을 기리고 있다. 1999년 12월 30일 향년 94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 1098의 2번지술좌(戌座)에 있다. 배위는 인종(仁鍾)의 딸인 밀양박씨(密陽朴氏) 복남(福南)이다. 참고문헌 : 경주최씨 기본 대동보(병술보), 고령세거성씨편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