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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0 - 당(伽倻書堂) 건축을 주재(主宰)하였다. 1953년 10월 14일 향년 84세로 졸(卒 ) 하였다. 묘는 고령군 우곡면 속동 안산(案山) 정좌(丁坐)에 있으며 비문은 고령 인 박태호(朴泰顥)가 지었다. 문집은 고재집(古齋集) 2권이 있으며 1990년 손 자 재욱(在旭)에 의해 ‘나라여! 내나라여’ 라는 제목으로 국역(國譯)되어 간행 되었으며 한시집(漢詩集)은 1999년 ‘망국(亡國)의 한(恨)’으로 국역(國譯)되어 간행되었다. 1963년 200명 내외 인사가 공을 추모하는 후학들의 모임인 고재 계(古齋稧)를 만들어 정기모임을 하고 있다. 초취(初娶)는 진양정씨(晋陽鄭氏 ) 이며 재취(再娶)는 성옥(成玉)의 딸인 여주이씨(驪州李氏)이다. 참고문헌 : 경북을 빛낸 인물, 경주최씨 동성군 파보, 나라여! 내나라여 망국(亡國)의 한(恨) ●최기순(崔基淳) 본관이 강릉(江陵)이며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에서 최능한(崔能翰)의 셋째 아들로 1893년 태어났다. 15세쯤에 부모를 따라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로 옮겨 살았다. 최기순은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1925년 33세에 만주 로 갔다. 1920년 청산리전투 후 일본군의 간도 지방에서의 학살과 1921년 자 유시사변 등으로 만주·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은 분산되고 침체되면서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때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중심으로 각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 회의를 개최한 결과, 1924년 11월 만주에서 독립운 동 연합체인 정의부(正義府)가 탄생하였다. 1926년 10월 정의부는 제3회 중앙 의회를 개최하여 군민대표회에서 민정으로 복구하고 헌장을 개정하였다. 이때 부터 정의부는 독립운동 단체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무력 행동을 삼가고 식산흥업(殖産興業)에 힘쓰는 활동을 폈다. 그리하여 재만 한인 2세를 대상으 로 부내 한인 마을마다 소학교를 설립하였다. 공은 사평성(四平省) 개원(開源 ) 에서 우국지사 자녀를 교육하는 한인 학교를 창립하였고, 이범석(李範奭) 장군 과 같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의부(正 義府) 3구장(三區長)을 맡고 있던 공은 1927년 신의주로 이송되어 12월 7일 신의주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그곳에서 향년 35세 나이로 순절(殉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