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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7 - 제정⌈제7회 향토문화대상⌋ 전통문화부문 본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 11월 19일 향년 91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성산면 사부2리 싯찔 풍곡에 있 다. 배위는 주백(周伯)의 딸인 청주한씨(淸州韓氏) 만주(晩珠)이다. 참고문헌 : 창녕조씨 시중공파 파보(을축보), 고령군지(1996년) ●조을환(曺乙煥)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성문(聖文)이고 호는 학산(學山)이다. 처사(處士 ) 병현(秉現)과 사인(士人) 계원(啓源)의 딸인 강릉유씨(江陵劉氏) 사이에서 장남 으로 1895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비범 하여 일찍이 봉강(鳳岡) 조상(曺塽), 미강(渼江) 박승동(朴升東) 양 선생의 문하 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한 후 신지식(新知識) 신학문(新學問)의 전파자로 인재 양성(人材養成)의 요람(搖籃) 계성학교(啓聖學校)에서 학업을 연마하여 신구학 문(新舊學問)을 아우르는 폭넓고 깊은 공부를 하였다. 일본 등지에서 오랜 방 랑(放浪)을 끝마치고 해방후 고국에 돌아왔으나 좌우이념(左右理念)의 대립과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으로 인하여 극도로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자 홀연히 세속(世俗)의 명리(名利)를 멀리하고 향촌(鄕村)에 은거(隱居)하면서 학문(學問 ) 과 후진양성(後進養成)에 주력했다. 송곡(松谷)에서 출발하여 나정(羅亭) 덕양 서당(德陽書堂)에서 형편이 어려운 원근의 청소년들에게 30여 년 동안 사물의 이치(理致)와 사람의 도리(道理)를 가르쳐서 깨우치게 한 학생이 다산, 성산 , 용암, 성주, 개진, 달성에 걸쳐 수백 명에 달했다. 종신(終身)토록 육영사업(育 英事業)에 진췌(盡悴)한 공로를 인정받아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농림부장관 , 문교부장관 등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상하였다. 선현(先賢)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모범을 보이고 전통윤리(傳統倫理)와 미풍양속(美風良俗) 보존과 보급에 한평 생 혼신의 정력(精力)을 경주하여 풍속교화(風俗敎化)에 큰 업적을 남겼다. 만 년에 대구로 이거하여 대구시 유림회장(儒林會長)을 지냈다. 1974년 3월 향 년 79세로 대구시 성당동 자택에서 졸(卒)하였다. 후학들이 스승의 학문(學問 ) 과 덕행(德行)을 추모하기 위하여 유몽회(牗蒙會)를 결성하고 공의 유향(遺香 ) 이 서린 창녕조씨 재실인 후송재(後松齋)옆에 ‘학산(學山) 창녕조공 추모비’를 세웠다. 배위는 상룡(相龍)의 따님인 밀성손씨(密城孫氏)이다. 참고문헌 : 학산창녕조공추모비명, 창녕조씨 태복경공 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