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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6 - (應煥)의 딸인 어머니 파평윤씨(坡平尹氏) 사이에 정희택(鄭喜澤)은 둘째 아들로 1919년 4월 8일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보(大邱高普)를 거쳐 1942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한 후 고등문관시험(高等文官試驗)에 합격하였으나 일제강점기 검,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고 향리(鄕里)에서 은둔하였 다. 해방 후인 1946년 사법부 감찰관을 시작으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와 부장검 사, 대구지방검찰청 및 부산지방검찰청 차장검사, 대구고등검찰청과 서울고등 검찰청 차장검사·중앙수사국장을 거친 뒤 1961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제5공 화국 헌법개정심의위원회 위원, 국가보위입법회의 법제사법위원장으로도 일하였다 .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민 주정의당(民主正義黨) 제11대 국회의원(國會議員) 비례대표(比例代表) 7번으로 당선되었다. 그 후 1982년 제10대 감사원장(監査院長), 1984년 방송위원회(放 送委員會) 위원장(委員長), 1986년 언론중재위원회(言論仲裁委員會) 위원장(委 員長)을 역임하였다. 2000년 2월 10일 향년 82세로 졸(卒)하였다. 을지무공훈장 (乙支武功勳章), 대통령함흥장(大統領咸興章), 청조근정훈장(靑條勤政勳章), 콜 롬비아민주대장 등을 받았다. 참고문헌 : 최고.최초를 찾아라 고령기네스 (고령군/고령문화원. 2016년 5월)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대한민국 헌정회 회원 프로필 ●조용찬(曺龍贊)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족보명은 규익(圭益)이다. 성암(誠庵) 신상선(申相㵛)과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양문하(兩門下)에서 수학(受學)한 겸재(謙齋) 유생 (幼生) 정환(廷煥)과 기열(琪烈)의 딸인 고령박씨(高靈朴氏) 사이에서 1911년 11월 20일 태어났다. 한평생을 대가야(大加耶) 역사(歷史)와 문화(文化) 연구에 몰두하여 ⌈대가야의 얼⌋, ⌈적림산(赤林山) 주변사⌋, ⌈고령향교 연혁⌋등 책자를 발간하는데 집필을 담당하였다. 1971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532번 지 소재 양전동(良田洞) 암각화(巖刻畵)를 발견하여 학계(學界)에 보고하여 보 물 605호로 지정하는데 공헌하였다. 고령군의 향토사(鄕土史) 발굴·조사 및 연 구 활동으로 향토사를 정립한 공로로 1991년 제2회 봉사부문에서 ⌈자랑스런 고령군민상⌋을 수상하였고, 1991년 11월 19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