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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3 - 묘는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 선영 아래 축좌(丑坐)에 있다. 배위는 차복(且福)의 딸인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참고문헌 : 인동장씨 황상파 파보(병자보), 동아일보(1976년 4월 8일) ●정광식(鄭光植)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 만수(萬壽)와 재원(在轅)의 딸인 연안차씨(延安車 氏) 순임(順壬) 사이에서 1923년 12월 29일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 96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 정칙학원(正則學園) 중학교 야간부에 재학 중이던 1942년 7월 한 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민족차별에 분개하여 동료들과 함께 한국독립을 실현하고 자 일진회(日進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동지들을 규합하고 장 차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할 것 등을 협의하였다. 이로 인해 일 경에 체포되어 1944년 6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육군 및 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4년 5월 1일 향년 73세로 졸(卒)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建 國勳章) 애국장(愛族章)을 추서(追敍)하였다. 묘는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에 있다. 참고문헌 :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판결문(대구지방법원, 1944년 6월 26일) ●정남택(鄭南澤)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1920년과 1936년 대홍수를 겪으며 물이 넘쳐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다섯 개의 마을 주민들을 위해 마을을 흐르는 하천 양쪽에 제 방을 쌓아 주어 주민들이 고령읍 외2리에 혜적비(惠積碑)를 세워 칭송하였던 자 경탁(景倬), 호 소송(小松)으로 자산가(資産家)인 아버지 운한(雲漢)과 윤 응환(尹應煥)의 딸인 어머니 파평윤씨(坡平尹氏) 사이에 장남으로 1912년 2월 3일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591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 경도동사중학교(京 都東寺中學校)를 졸업한 후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입명관대학)]을 중퇴하 고 실업(實業)에 종사하였다. 광복(光復) 후 우익 청년 단체인 대한청년단(大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