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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7 - (萬歲示威運動)과 관련해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宋晦根)이 피체(被逮 ) 되면서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이 발각돼 사건의 전모(全貌)가 드러나자 공도 이때 피체(被逮)되어 모진 고초(苦楚)를 겪었으며 1919년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에 의하면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궐석(闕席)한 채 징역 6월을 판결(判決 ) 을 받았다. 1943년 12월 30일 향년 78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성산면 창리(倉里) 뒤 저전산(楮田山) 임원(壬原)에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故人)의 공훈 (功勳)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建國褒章)을 추서(追敍)했다. 배위는 찬동(贊 東)의 딸인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참고문헌 :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파평윤씨 태위공파 세보(을축보) ●이경(李俓)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초휘(初諱)는 규신(圭紳)이고 자는 성재(性哉)이며 호는 진화(珍和)이다. 생원시(生員試)에 장원(壯元)으로 입격(入格)한 영훈(英勳)과 교리(校理) 신영(臣榮)의 딸인 광주이씨(廣州李氏) 사이에서 고종 17년(1880년 ) 에 태어났다. 경능참봉(敬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으며 1907년 고령의 국채보 상운동(國債報償運動) 관련하여 단연상채회(斷煙償債會) 의연금(義捐金) 모금시 최고 액수인 50원(元)을 쾌척(快擲)하여 크게 기여하였다. 1922년 8월 고령청 년회관에서 개최된 고령소비조합(高靈消費組合) 창립총회(創立總會)에서 조합 장(組合長)에 선출되어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시켰다. 1939년 9월 1 7 일 향년 60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대가야읍 저전동 반송(盤松) 평전 (平田) 경좌(庚坐)에 있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 다. 배위는 능열(能烈)의 딸인 여강이씨(驪江李氏)이다. 참고문헌 : 고령의 국채보상운동, 성산이씨 세보(무자보) ●이규석(李圭錫)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상근(相慬)이고 호는 일파(一坡)이었다. 유학(幼 學)손암(遜庵) 호의(鎬義)와 인식(寅植)의 딸인 성산이씨(星山李氏) 사이에서 1904년 3월 19일 태어나 백부(伯父) 호인(鎬仁)에게 출계(出系)하였다. 1946년 낫질내에 배움의 장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 내곡초등학교(乃谷初等學校) 건립 대지(垈地) 및 교사(校舍) 건축 추진위원(推進委員)을 맡아 학교 인가 및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