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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6 -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씨름 영신 왕국’을 건설하였던 주역(主役)이었다 . 한때 전국 씨름판의 일반부, 대학 선수의 7할이 영신고 출신이 차지하는 전성 기를 구가하였던 바 세인(世人)들이 그를 한국 씨름계의 대부(代父)로 불렀다. 그 후 경북씨름협회 전무이사와 KBS 아마씨름 해설위원을 거쳤다. 씨름 외길을 걸 어오면서 천하장사 박범조(朴範祚), 홍현욱(洪顯旭), 이봉걸(李鳳杰), 향토 쌍림면 신곡리 출신으로 1979년 제1회 KBS배 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장사’ 타이틀을 차 지했던 장해식(張海植) 등 수십 명의 기라성(綺羅星) 같은 제자(弟子) 역사(力士 ) 를 길러낸 산파역(産婆役)을 하였다. 1994년 제자인 왕년의 씨름 스타들이 윤병태(尹炳台) 감독의 회갑(回甲)을 맞이하여 전국씨름왕대회가 열리는 대 구시민체육관의 모래판에서 회갑연(回甲宴)을 개최하여 훈훈한 사제(師弟)의 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는 영신고와 영남대에서 많은 선수를 양성하여 경북 씨름의 명성을 떨치게 하는 등 오늘날 민속씨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크게 공 헌하였을 뿐 아니라 향토 고령의 씨름을 위하여 제자인 장해식(張海植)과 함 께 기금을 조성하여 ‘대가야(大伽倻) 씨름회’를 조직해 고령중학교에 전천후 씨름 경기장을 기증하는 등 고령씨름 발전에도 일익(一翼)을 담당하였으며 안정호(安正 鎬)의 바통을 받아 대가야(大伽倻) 씨름회 제2대 회장을 지냈다. 2015년 7월 2 일 향년 70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 선영에 있다. 참고문헌 : 최고.최초를 찾아라 고령기네스 (고령군/고령문화원. 2016.5월) 고령군체육사(2012년) ●윤양식(尹亮植)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옥여(玉汝) 또는 태봉(泰奉)이다. 아버지 태규(泰奎)와 수극(壽極)의 딸인 창원황씨(昌原黃氏) 사이에서 고종 3년(1866년) 7월 28일 고령군 성산면 용소동(龍沼洞)에서 태어났다. 공은 젊었을 때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과거를 보는 데 필요한 학업을 폐지하고 궁벽(窮僻 ) 한 시골에 은거(隱居)해 재주나 학식 따위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감추었으며 스 스로 뉘우치고 경계했다.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 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 등 137명이 참여한 유림의 항일운동이었던 세칭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이라고 불리는 이 거사(擧事)에 분연(憤然)히 동참해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인 ‘한국유림송파리평화회서(韓國儒林送巴里平和會書) ’ 에 124번째로 서명해 조국독립(祖國獨立)의 당위성(當爲性)을 세계만방(世界萬 邦)에 알리는데 적극 가담했다. 1919년 4월 12일 경북 성주의 만세시위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