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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7 - (申肅)과 함께 난징(南京)에 파견되어 한중연합군을 조직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교섭하였다.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 창당에 참여하여 서기부원이 되었고 중앙집 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민족혁명당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자 11월 임 시의정원의원에 선임되었다. 1944년 임시정부 학무부 차장으로 선임되었고 1945년 3월 학무부 부장이 되면서 임시정부 국무위원이 되었다. 1945년 광복 이 되자 제1차 임시정부 귀국단으로 11월 23일 환국하였다. 1946년 과도입법의 원에 당선되고 1947년∼1948년 모교인 경신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48년 5월 제헌 국회위원 선거에 민족통일본부 후보로 고령에서 출마하여 당선된 후 194 8 년 10월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위원장 (委員長)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6·25 때 납북(拉北)되어 1956년 4월 28일 평양에서 졸(卒)하였다. 1958년 평양 재북인사 묘역에 안장되고 1990년 대한 민국 건국훈장(建國勳章) 독립장(獨立章)이 추서(追敍)되었으며 1992년 11월 애 국지사 현창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주관하여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고자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가야공원 내에 문학박사 이가원(李家源)이 근찬(謹撰)하고 청도(淸道) 김문배(金文培)가 근서(謹書)한 광복지사(光復志士) 영주(令洲 ) 김상덕(金尙德) 선생 사적비(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2011년 3월 15일 김상 덕 평전 출판기념회가 고령군청에서 열렸다. 참고문헌 : 김상덕 평전 (김삼웅, 2011), 고령문화사대계 1-역사편 (고령군 대가야박물관·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8년), 최고.최초를 찾아라 고령기네스 (고령군/고령문화원. 2016.5월) ●김연수(金連洙)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소백(小白) 종중(鍾仲)과 기계유씨(杞溪兪氏) 인선(仁 先)사이에서 차남으로 1940년 4월 5일 고령군 성산면 기족리에서 태어났다 .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후 소위로 임관하여 대령(大領)으로 진급하여 37사단 연 대장, 75사단 부사단장을 거쳐 미국 대사관 및 필리핀 대사관 무관(武官)을 지 내고 동국대 교련단장을 마지막으로 전역(轉役)하였다. 그후 중앙고속버스 본 부장과 재향군인회 국제협력관을 역임하였다 2015년 9월 16일 향년 76세로 졸(卒)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1996년 1월11일), 김해김씨 판서공 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