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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 - 해외 학자 및 전문가와 협력하여 연구하면서 친환경에너지인 풍력발전분야의 선진화를 위하여 매진(邁進)하다가 2008년 3월 14일 졸(卒)하였다. 임종 직전 ‘아름다운재단’에 유산(遺産)을 기부하면서 조성된 호민기금(好民基金)으로 ‘호 민(好民) 기우봉(奇宇奉) 풍력상(風力賞)’을 제정하여 본인이 못다 이룬 대한민 국 풍력발전(風力發電)의 꿈을 후진(後進)이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2013년부 터 매년 ‘한국풍력산업협회’에서 풍력발전분야 연구 및 산업발전공로자에게 시 상하고 있다. 배위는 현석(炫碩)의 딸인 장흥마씨(長興馬氏) 호상(好祥)이다. 참고문헌 : 행주기씨 대동보 원편, 시사제주페이스북(2013년 6월 25일) ●김구현(金龜鉉) 본관은 일선(一善)이며 자는 낙서(洛瑞)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감조 관(監造官)을 지낸 발(墢)의 차남(次男)으로 1867년 1월 11일 태어났다. 고종 22년(1885년)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1896년 1월 참위(參尉), 동년 5월 부위 (副尉), 6월 정위(正尉) 중대장(中隊長)을 거쳐 1897년 웅천현감(熊川縣監)에 제수(除授)되었다. 1904년 정3품으로 승품(陞品)되어 중대장(中隊長)으로 근무 하였다. 1908년 경시청(警視廳) 경시(警視)로 자리를 옮겨 우임관 4등에 서임 (敍任)되었다. 같은 해 의병(義兵) 탄압을 목적으로 창설된 제2순사대(第二巡査 隊) 경시(警視)를 지냈다. 그후 1909년 예천군수(醴泉郡守), 1910년 성주군수 (星州郡守), 1911년 하양군수(河陽郡守), 1912년 고령군수(高靈郡守)를 역임하 였다. 1916년 2월 고령군 참사(參事),1919년 고령군 쌍동면장(雙洞面長)으로 임명되 었다. 1920년부터 1927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경북도평의회(慶北道評議會) 의 원(議員)을 지냈다. 1921년 중추원(中樞院) 참의(參議) 후보로 추천되었으나 임 명되지 못했다. 1925년 6월 22일 향년 59세로 졸(卒)했다. 2008년 민족문화연 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가곡 사 학곡 사설묘지 해좌에 있다. 초취(初娶)는 참판(參判)을 지낸 인익(寅翼)의 딸 인 숙부인(淑夫人) 완산이씨(完山李氏)이며 재취(再娶)는 유원(有遠)의 딸인 숙 부인(淑夫人) 옥산장씨(玉山張氏)이다. 참고문헌 : 고령의 현대사(고령문화원, 2014년), 일선(선산)김씨 문충공파(文忠 公派) 세보(기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