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page

- 285 - ●한열부(韓烈婦) 배준량(裵俊良)의 아내 청주한씨(淸州韓氏)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남편은 왜적 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포로(捕虜)가 된 처지에 이르렀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그녀를 왜구들은 때로는 회유(懷柔)하고 때로는 위협(威脅 ) 하며 겁탈(劫奪)하려 달려들었다. 이에 그녀는 정절(貞節)을 지키기 위해 저항 했다. 하지만 왜구들의 강압(强壓)에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그녀 는 칼로 자결(自決)하였다. 그녀의 죽음을 목도(目睹)한 사람들은 그녀가 죽음 을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아무 두려움 없이 행동했다 고 전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자 선조 30년(1597년) 정려문(旌閭門 ) 을 세워 주었다. 참고문헌 : 영남여지 고령편(1894년),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허열부(許烈婦) 29세에 남편이 죽자 조석(朝夕)으로 제사(祭祀)를 받들어 9년을 지성으로 치 상(治喪)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자 선조 4년(1576년) 정려문(旌 閭門)을 세워 주었다. 참고문헌 : 영남여지 고령편(1894년),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