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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4 - 중(山中)으로 피난을 갔는데 왜적이 나타나 칼로 남편을 죽이려고 치는데 부인 이 그 칼을 잡고 함께 죽으니 광해군 1년(1609년)에 정려(旌閭)를 세워 칭송하 였다. 참고문헌 : 영남여지 고령편(1894년), 고령의 충효의열록(2016년) ●김열부(金烈婦) 선비 전주인(全州人) 이원영(李遠永)의 아내이다. 결혼한 처음부터 남편이 못 쓸 병으로 고생을 하였는데 부인이 지성으로 간호를 하였으나 끝내 죽었다. 남 편의 시신(屍身)을 잘 염습(殮襲)을 하고 남편의 초상(初喪)을 마치는 날 제사 에 남편에게 염습(殮襲)할 때 입히고 남은 것으로 입고 음독(飮毒)하여 목숨을 끊었는데 남편이 죽은 시간과 같았다. 이러한 사실이 영읍(營邑)에 알려져 포 상(褒賞)을 하였다. 참고문헌 : 영남여지 고령편(1894년), 고령의 충효의열록(2016년) ●김열부(金烈婦) 경주인(慶州人) 최광학(崔光鶴)의 아내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남편이 학 질(瘧疾)에 걸려 여러 해를 괴로워하니 매일 밤 그릇에 물을 받들고 하늘에 빌 어서 소생(甦生)하였다. 뒤에 또 병이 매우 심하니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으로 흘러 넣고 허벅지를 베어 국을 만들어 드려 효험을 얻었으나 끝내 상(喪)을 당 하였다. 슬픔으로 몸이 상(傷)하면서도 예(禮)를 극진히 하였다. 또 시어머니께 서 병들자 정성으로 하늘에 기도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효도(孝道)와 굳은 지조(志操)를 온전히 하였다고 칭송하였다. 참고문헌 : 삼강록(1868년), 고령의 충효의열록(2016년) ●박열부(朴烈婦) 양천인(陽川人) 최흠(崔欽)의 아내인 고령박씨(高靈朴氏)이다. 결혼한 지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