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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3 - 칠성님께 지성껏 백일기도를 하였던 바 꿈에 신의 가르침을 얻어 대구 동산병 원(東山病院)에서 한 달을 넘게 무료 치료하여 남편의 두 눈이 다시 밝아 졌 다. 이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열녀(烈女)라 이르고 동네에서 표창하고 또 경 학원(성균관) 및 이 고을 향교에서도 표창을 하여 그 글을 전한다. 참고문헌 : 경학원 표창의안, 이병무 합부인 김씨 포열문 ●김열부(金烈婦) 이억구(李億耈)의 아내인 김소사(金召史)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수절(守節)하 던 중 박천생(朴天生)이란 자가 나쁜 마음을 품고 김씨를 겁탈(劫奪)하려 할 때 불같은 마음으로 스스로 도끼로 자기 손을 잘라 굳은 절개(節槪)를 보이니 그 자는 천성(天性)이 부끄러워 떠나게 되었다. 주) 소사(召史) : 성 아래에 붙이어 과부를 점잖게 일컫는 말 참고문헌 : 영남여지 고령편(1894년),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김열부(金烈婦) 부안인(扶安人) 김기(金耆)의 딸이며 현풍인(玄風人) 매헌(梅軒) 곽수강(郭壽 崗)의 장자(長子)인 선비 곽요(郭遼)의 아내이다. 18세에 시집을 와서 3년만에 남편이 죽었다. 김씨가 애통한 마음으로 굶어 죽기로 결심을 하였으나 누구하 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형편이라 남편의 3년 상을 차려줄 이가 없으니 2일마 다 콩과 쌀 한술씩으로 3년을 연명(延命)하여 남편의 상(喪)을 마치고 조용히 스스로 맹세하고 굶어 죽으니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칭찬이 자자하였 다. 참고문헌 : 영남여지 고령편(1894년),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김열부(金烈婦) 사인(士人) 이사용(李士龍)의 아내이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부(夫婦)가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