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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0 - 참고문헌 : 영남삼강록, 성주향교지, 성주지 ●유효부(兪孝婦) 기계인(杞溪人)로 유문준(兪文濬)의 딸이며, 행주인(幸州人) 기봉연(奇鳳衍)의 아내이다. 가정 형편이 매우 궁핍(窮乏)하여 아침저녁의 끼니를 죽으로 때워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밥상에는 항상 흰 쌀밥을 지어 올렸다. 그리 고 형편이 너무 어려워 쌀을 마련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자신의 머리를 잘 라 팔아 그 돈으로 시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기계유씨(杞溪兪氏)로는 부지런한 성품으로 늘 베를 짜서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나갔다. 그런데 하루는 유씨가 짠 베를 가지고 시장에 팔러간 시아버지가 돌아오던 중에 베를 판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화를 낼 만도 하였지만 미안해 할 시아버지를 생각하여 어찌된 일인지조차 묻지 않았다. 또 시아버지께서 설사병이 들어 약이 효험이 없었다. 홀연히 산꿩이 부엌으로 들 어와 잡고서는 기뻐하니 시아버지께서 “산꿩이 부엌에 들어온 것은 반드시 무 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에 매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면 곧 이것은 사냥꾼 에게 쫓겨서 궁하여 사람에게 몸을 맡긴 것인데 사람이도리어 헤칠 수 있느 냐?라고 하시며 잡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따라 날려 보내었는데 이윽 고 그 꿩이 다시 와서 상에 부딪쳐 스스로 죽어 삶아 드리자 병이 나았다. 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省墓)함을 바람과 비에도 거르지 않고 겨울에 눈이 내릴 때는 묘소를 쓸었다. 관(官)으로부터 비단이 내려졌으 나 받지 않았다. 한당(韓堂) 장희원(張喜遠)은 「효부전(孝婦傳)」을 지어 유씨 (兪氏)의 효행(孝行)을 널리 알렸다. 참고문헌 : 삼강록(1868년),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전효부(全孝婦) 성산전씨(星山全氏) 고령 입향조(入鄕祖) 전순(全順)의 17세손 진사(進士) 전 해덕(全海德)의 차녀(次女)이며 사인(士人) 최만준(崔萬俊)의 아내이다. 슬하에 형제뿐인 소가정(小家庭)에서 종통계대(宗統繼代)를 위하여 맏아들을 큰댁의 양자(養子)로 세우면서 양모(養母)를 봉친갈성(奉親竭誠)토록 하였고 1989년 9 월 9일에 있었던 본인의 상사(喪事)에서도 남아 있는 막내에게 맏상주(喪主)의 책무(責務)를 부여하니 사림(士林)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특히 막내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