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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 - 던 터)”로 부르며 사람의 충절(忠節)에 못지않게 의로운 행적(行績)을 남긴 호 랑이를 기리고 있다. 따라서 고령군에서는 2014년 11월 14일 3년간 출천효자 (出天孝子) 이천을(李天乙)의 여묘살이를 도왔던 의로운 호랑이의 행적(行跡)을 영구히 기념하고 후인들에게 효행(孝行)의 산교육장으로 삼고자 ‘의호지(義虎 址) 입간판’을 건립하였다.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용리 산 39-1번지 소재 선고 (先考) 묘소밑 해좌에 있다. 참고문헌 : 연조귀감 불복신벌정록(1777년), 여주이씨 문순공파 세보(병신보) 미숭산(美崇山) 종회지(宗會誌) 창간호(創刊號) ●유경해(兪景海)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아버지는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유의(兪義)의 차 자(次子)로 명종 16년(1561년)에 태어났다. 고려 유신(遺臣)으로 조선에 불복한 좌찬성(左贊成) 유탄(兪侹)의 8세손이다. 14세 때 그의 아버지가 등창을 앓자 입으로 빨아내어 병이 차도(差度)가 있었다. 부모상을 당하여 2번이나 손가락 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자 모두 10개월 목숨을 연장(延長)시켰다. 3년간 여묘 살이를 할 때 사나운 호랑이도 길들여진 것을 보고 사람들이 효(孝)에 감복(感 服)한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관감록(觀感錄)에 기록되어 있다. 효행이 널리 알려지자 향리(鄕里)와 이웃이 모두 효자(孝子)라고 칭송하였으며 당대의 유학자(儒學者)인 치재(癡齋) 허명신(許命申)이 가장 아껴 존경(尊敬)하는 벗 (畏友)으로 칭하면서 도의지교(道義之交)를 하였다. 종족(宗族)들이 그의 효행 을 흠모(欽慕)하여 1961년 9월 금산재 도로변에 ‘기계유씨(杞溪兪氏) 삼효자 (三孝子) 세적비(世蹟碑)’를 세웠으나 그 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정곡(鼎谷 : 솟찔)에 있는 ‘주부(主簿) 기계유공(杞溪兪公) 휘(諱) 득주(得珠) 유허비(遺墟 碑) 옆으로 옮겨 세웠다. 비문은 후손 유민식(兪敏植)이 지었고 묘소는 고령군 성산면 사부2리 도룡골에 있다. 참고문헌 : 연조귀감 관감록(1777년), 삼강록(1872년) ●유세훈(兪世薰)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초휘는 세명(世蓂)이고 자는 훈혜(薰兮)이며 선조 16년 (1583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효자 유경해(兪景海)이다. 그는 평소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는데, 아버지가 학질(瘧疾 : 말라리아)에 걸려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