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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년 문충공(文忠公) 정몽주(鄭夢周)가 선죽교(善竹橋)에서 척살(刺殺)된 후 조선 이 개국(開國)되자 그 일당으로 지목되어 직첩(職牒)을 회수하고 부자(父子)가 먼 곳으로 귀양을 갔다. 그 후 옥천군수(沃川郡守)로 재임할 때에 선정(善政)을 베풀어 아래와 같은 군인송(郡人頌)이 서산 김홍락(西山 金興洛)이 치은 서산 선생문집속집(西山先生文集續集)에서 고려사간원사김공묘갈명(高麗司諫院事金 公墓碣銘)에 실려 있어 이를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正立朝端右(정립조서 우) 조정반열의 오른쪽에 바로서고 榮光父子賢(영광부자현) 부자(父子)가 어질어서 영광스럽네 名登輿地覽(명등여지람) 이름은 여지승람에 등재되고 遺德萬年傳(유덕만세전) 남긴 은덕 만세에 전하리라 뒤에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으로 추증(追贈)되었다. 배위는 숙부인(淑夫 人) 성산이씨(星山李氏)이며 전서(典書)를 지낸 복상(復常)의 따님이다. 묘는 합 폄(合窆)으로 시조공 묘아래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간원사김공묘갈명(高麗司諫院事金公墓碣銘), 태조실록, 고령 김씨족보(갑술보) ●김발(金墢) 본관은 일선(一善)이며 자는 치발(致發)이다.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기진(驥 振)과 석덕(碩德)의 딸인 강진안씨(康津安氏) 사이에서 순조 26년(1826년) 태 어났다. 철종 6년(1855년) 식년(式年) 생원시(生員試)에 입격(入格)하였다. 영릉 참봉(英陵參奉)•선략장군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龍驤衛副司果)에 제수되었으며 통훈대부행감조관(通訓大夫行監造官)에 승서(陞敍)되었다. 고종 14년(1877년 ) 12월 4일 향년 62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가곡지행(佳谷池行 ) 우편 상봉(上峰) 술좌(戌座)에 있다. 초취(初娶)는 증이조판서 학추(學樞)의 딸 인 숙인(淑人) 옥산장씨(玉山張氏)이며 재취(再娶)는 숙인(淑人) 김해김씨(金海 金氏)이다. 註)승서(陞敍):벼슬을 올려 줌 참고문헌 : 숭정기원후4을묘식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乙卯式司馬榜目), 일선(선 산)김씨 문충공파 세보(기축보), 고령군지(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