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page

- 257 - 斎) 경내(境內)에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 삼강록(1872년),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이광영(李光榮)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춘장(春長), 호는 극암(克菴)이다. 아버지 이신번 (李信蕃)과 어머니 연안김씨(延安金氏) 사이에서 성종 14년(1483년) 태어났다 . 고려 최고 문장가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의 9세손이며 고려 왕조 광복(光復)을 위하여 하늘을 떠받치는 절개(節槪)를 지키다 순사(殉死)한 안동 장군(安東將軍) 이미숭(李美崇)의 현손이며 천출효자(天出孝子)로 이름을 널리 떨쳤던 졸헌(拙軒) 이천을(李天乙)의 증손자이다. 이러한 충효가문(忠孝家門)의 가풍(家風)을 계승한 그는 타고난 천품(天稟)이 순수(純粹)하고 부모를 효도로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였다. 평생 의롭게 살았고 재물을 모으지 않았으며 목숨 을 다할 때 까지 행동함에 있어 사람들이 미워하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경상도 고령현 효행편의 효행기록을 인용하면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두 번이나 제 손가락을 잘라 슬픔을 표하는 단지효행(斷指孝行)을 하면서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 다. 승중상(承重喪)을 당해서 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지극한 효성과 우애는 그의 타고난 성품이다. 한때 멀고 가까운 곳에서 깊이 존경하고 사모하 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이에 음식을 보내어 접대하였다. 이 일이 나라에 알려 져 가정(嘉靖) 37년 즉 명종 13년(1558년) 정월에 3대에 걸쳐 그 집의 부역(賦 役)과 조세(租稅)를 면제해 주는 포상(褒賞)조치인 복호(復戶)를 내려 주었다.” 효행록(孝行錄),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 등 각종 문헌을 상고(詳考)하여도 부 모상(父母喪)과 조부상(祖父喪)을 당하여 예(禮)로써 9년 동안 여묘(廬墓)살이 를 한 효자(孝子)는 그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하여 2015년 5월에 발행된 ‘고령 기네스’에 최장(最長) 여묘(廬墓)살이를 한 효자(孝子)로 기록되었다. 2015년 4 월 여주이씨 고양군후예 대종중에서는 그의 효행사실을 후손들이 본받아 신행 (信行)하도록 경북대학교 신태관(申泰寬) 외래교수가 비문을 지은 ‘여주이씨(驪 州李氏) 효열(孝烈) 사적비(事蹟碑)’를 고령군 쌍림면 용2리 마을회관 앞에 세 웠다.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 산 31번지 선영의 선고(先考) 계단밑에 있 다. 참고문헌 : 여지도서(1765년), 관감록(1777년), 영남여지 고령편(18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