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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4 - ●신급(申汲)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여인(汝仁)이다. 아버지는 신경추(申景樞)이고 인 조 2년(1624년)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 라 피를 내어 약에 타서 드렸다. 어머니의 장례 후에는 무덤아래에서 비바람도 피하지 않은 채 소리 내어 서럽게 우니, 마을 사람들이 그를 위해 움막을 지어 주고 죽과 마실 것을 마련해 가져다 주었다. 영조 5년(1729년) 기유년에 이 일 이 나라에 알려져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증직(贈職)되었다. 조카 신정제(申正 濟)와 함께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에 ‘고령신씨 양공 효행비(高靈申氏 兩公 孝 行碑)’를 세웠으며 7세손 신용구(申瑢求)가 행장을 짓고 광주 노근용(盧根容)이 비문을 지었다. 묘소는 우곡면 사촌리 대사동에 있다. 참고문헌 : 여지도서(1765년),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신종록(申鍾祿)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효자 신정제(申正濟)의 현손이고 호는 한은(閒隱)이며 순조 30년(1830년)에 태어났다. 그는 3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를 극진한 효성으로 섬겼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앓아눕자 낮에는 곁을 지키며 보살피고, 밤이면 깊은 골짜기에 들어 가 정화수(井華水)를 길러 놓고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어머니 대신 자신이 앓게 해 달라고 빌었다.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 고 3년 동안 치성(致誠)을 드린 끝에 마침내 어머니의 병이 나으니 향리(鄕里 ) 에서 높이 받들어 귀하게 여겼다. 조상(曺塽)이 실기(實記)를 지었다. 묘소는 고령군 개진면 부1리에 있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신정제(申正濟)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초천(樵川)으로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신계상(申啓相)이다. 그는 부모가 동시에 전염병(傳染病)에 걸려 생명이 위급하 자 자신의 손가락을 모두 베어 피를 흘려 넣어 회생(回生)하게 하였으며, 입맛 을 잃어 음식을 먹지 못하자 얼음 속에서 잉어가 솟아오르고 눈 속에서 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