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page

- 253 - 애통(哀痛)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고 대상(大喪)에 이르러 제사할 고기를 얻지 못해 슬피 부르짖으니 홀연 수꿩(雄雉)이 무덤 곁에 와서 죽으므로 제사에 이 바지하였습니다” 또한 성종 3년(1472년) 2월 29일 성종실록 15권에는 효행사실(孝行事實)이 아 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령(高靈) 사람 백효원(白孝元)은 그 부모가 모두 늙자 봉양(奉養)을 극진하 게 하였으며, 아비가 병들어 누우니 3년 동안 시약(侍藥)하면서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아비가 죽자 흙을 져다 무덤을 만들고 처자는 돌보지도 않고 묘 곁 에 여막(廬幕)을 치고 몸소 불 때고, 혹은 빌리고 꾸어서 조석(朝夕)의 제사(祭 祀)를 바치었으며, 얼마 안되어 어미가 죽자 슬퍼하기를 꼭 같이 하였습니다.” 성종 9년(1478년) 8월 26일 그의 효행을 전해들은 이조(吏曹)에서 아래와 같 이 서용(敍用)할 것을 주청하여 부승동정(副丞同正)에 제수(除授)하였다. “도염부승(都染副丞) 동정(同正) 백효원(白孝元)은 집이 매우 가난하나 어버이 섬기기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하였는데, 일찍이 흉년을 만나자 쌀을 구걸하여 이바지하였고, 아비가 죽자 흙을 져다가 무덤을 만들었으며, 어미가 죽자 합장 (合葬)하여 6년 동안 여묘(廬墓)하였는데 애통하는 정이 초상(初喪)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청컨대 모두 즉시 재수에 따라 서용(敍用)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참고문헌 : 부승동정(副丞同正) 백공효원(白公孝元) 효행비문, 단종실록 ●서필원(徐弼元)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영조 26년(1750년)에 태어났다. 5세에 아버지를 여의 고 3년간 풀과 칡뿌리로 연명하면서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고 홀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계절이 겨울인데도 쓴 냉이를 원하시므로 석자나 되는 눈 아래서 냉이를 구하여 어머니에게 드렸고, 또 병환으로 병석에 누워 잉어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낙동강에서 잉어를 구해 드리고 지성으로 모시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68년 서씨 문중에 서 후손들의 귀감(龜鑑)으로 삼고자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 산 48번지에 서필원 효행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 효열행지(1987년), 고령문화사대계 2-사상편(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