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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 - 수차례에 걸쳐 고령, 성주, 합천, 현풍, 창녕, 대구, 칠곡, 의령 등지의 사림들 이 거듭 추거(推擧)하였으나 정려(旌閭)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 들 박섬(朴暹)도 사림에서 누차 효행을 기려 정장(呈狀)하여 정려를 청하였고 , 손자 박사연(朴師淵)도 사림에서 효행에 대하여 입사(立詞) 논의가 있는 등 3 대 효행에 걸쳐 정려를 추거(推擧)하였다. 묘소는 고령군 우곡면 사전리에 있 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배학조(裵學朝)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자는 화일(華日)이고 아버지는 배경혁(裵敬赫)으로 고 종 9년(1872년)에 태어났다. 그는 타고난 성품(性品)이 순수(純粹)하고 근검(勤 儉)하고 실속은 없이 겉만 화려(華麗)한 것을 싫어하였다. 일찍이 벼슬에 뜻을 버리고 부모님을 모시는 일에 마음과 몸을 다하였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 기 위해 형제들이 한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스스로 모범을 보여 형제간의 우애(友愛)를 돈독(敦篤)하게 하였다. 그의 효도에 대한 행적이 『동유학(東儒 學)』에 실렸다. 묘소는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우수동에 있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백효원(白孝元) 본관은 염포(鹽浦 : 충남 보령)이며 아버지는 전의현감(全義縣監)을 지낸 백권 (白綣)이로 고려 공민왕 21년(1372년)에 태어났다.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 使)의 장계(狀啓)로 단종 즉위년(1452년) 윤 9월 24일 단종실록 3권에 실려 있 는 공의 효행기록(孝行記錄)를 아래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고령현(高靈縣) 사람 부승동정(副承同正) 백효원(白孝元)은 집이 가난하고 어 버이가 늙었는데 (세종 18년 1436년) 정사년(세종 19년 1437년) 사이에 큰 흉 년이 들어서 쌀을 구걸(求乞)하여 어버이를 받들었으나 피로한 빛이 없고 아비 가 병이 들자 3년을 모시고 약을 보살피며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죽음에 이 르러, 친히 흙을 져다가 무덤을 만들고 묘 곁 여막(廬幕)에서 모든 상사(喪事 ) 를 일체 가례(家禮)에 따르고 7리(里) 밖의 물을 져다가 친히 불을 때어 조석 (朝夕)을 지공하였으며, 아비의 상(喪)을 마치지 못하고 그 어미가 또 죽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