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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 - 지는 박사준(朴思峻)이며 헌종 5년(1839년)에 태어났다. 그는 10세에 배우던 책을 덮고 나무를 하여 부모의 수고를 대신하였고, 15세에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머리에 종 기가 나서 온갖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고 고통스러워 하자 입으로 상처를 빨 아내며 보살폈고, 임종이 가까워지자 인분(人糞)을 맛보며 약을 지어 드렸으나 차도(差度)가 없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게 하였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뒤에는 아침저녁으로 묘소를 오가며 애통해하였다. 향도(鄕道)의 사림(士林)에 서 그의 행적(行蹟)을 조정에 거듭 천거(薦擧)하여 포상(褒賞)하게 하였다. 사 당 곡회당(谷晦堂)에 모셔졌으며, 장석영(張錫英)이 행장을 쓰고 만산(晩山) 이 시좌(李時佐)가 비문을 지었다.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에 있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박성대(朴成大)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성오(省吾)이고 호는 성재(省齋)이다. 유생(儒生 ) 치우(致佑)와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영조 49년(1773년) 태어났다. 자성 (資性)이 영민하고 민첩하였으며 부모님이 자기를 품어 준 은혜를 겨우 알게되 자 아버지가 병석에서 잉어회를 찾자 목 놓아 큰 소리로 울면서 하늘에 기도 하자 반룡천(盤龍泉)에서 한 척의 잉어가 뛰어 나와 가져와서 아버지께 바쳤 다. 그랬더니 소생(甦生)하자 사람들이 잉어로 효성을 바친 왕상(王祥)의 효감 (孝感)에 견주었다. 헌종 5년(1839년) 1월 22일 향년 67세로 졸(卒)하였다. 묘 는 고령군 쌍림면 용동 산곡(山谷) 신좌(辛坐)에 있다. 배위는 복래(福來)의 딸 인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참고문헌 : 순천박씨 판윤공파 파보(갑술보), 순천박씨 실록(實錄) ●박윤(朴潤)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덕부(德夫)이고 호는 죽연(竹淵)이다. 아버지는 양산군수(梁山郡守)를 지낸 박계조(朴繼祖)이며 중종 12년(1517년) 우곡면 도 진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극진한 슬픔으로 효성을 보였으며, 홀로 된 어머니를 동생 낙낙당(樂樂堂) 박택(朴澤)과 함께 지극한 정 성으로 모셨다. 특히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네 형제가 한집에 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