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page

- 249 - (儒生)들이 효행(孝行)을 칭송하고 이를 본받고자 무본계(務本契)를 모아 추모 (追慕)했으며, 1985년 우곡면 도진리 입구에 효행비(孝行碑)를 세웠으며 족질 (族姪) 문학박사 은용(恩用)이 비문(碑文)을 지었다. 참고문헌 : 도원록(2015년), 도계(桃溪) 박기언공(朴基彦公) 효행비문(孝行碑文 ) ●박문필(朴文弼)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부사(府使)를 지낸 박윤서(朴潤緖)의 아들로 효종(孝宗 )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訓練院) 선전관(宣傳官)에 이르렀다. 그는 평소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부모의 생명이 위급하자 자신의 손 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소생케 하고자 하였다. 그가 부모에게 보인 행동 하나하 나가 모두 예절(禮節)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보아온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를 추앙(推仰)하여 존경(尊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박문창(朴文昌) 본관 및 가족관계는 미상(未詳)이다. 평소를 부모를 모시는 데 효성을 극진히 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앓아누워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문득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공은 급히 강으로 달려가 고기를 잡고자 했다. 하지만 마음처 럼 고기가 잡히지 않자 그는 애타는 마음에 땅을 치며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러 자 큰 물고기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또한 아버지가 꿩고기가 먹고 싶다하여 꿩 을 구하려하자 홀연히 꿩이 마당으로 떨어졌다. 아버지가 임종(臨終)에 이르자 다급한 마음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소생(甦生)케 하고자 했다. 하지 만 아버지가 깨어날 기미(幾微)가 보이지 않자 거듭 손가락을 베어 아버지의 입으로 피를 흘려 넣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효심에 감복하여 모두들 그를 우러러 보았다. 참고문헌 : 고령군지(1996년), 충효의열록(2016년) ●박상림(朴尙林)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치순(致淳)이고 호는 사포(沙圃)이다 증조할아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