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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 -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그가 아버지의 무덤을 매일 같이 다녀오는데 하루는 배를 타고 낙동강(洛東江)을 건널 때 사공의 노가 그만 물에 떠내려갔 지만 하늘이 도와서 배가 노 없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는 그의 아버지 무덤에서 늦게까지 시묘(侍墓)를 할 때 호랑이가 옆에 와서 다 른 짐승들이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었다고 한다. 셋째는 그가 아버지의 무덤 을 다녀 올 때 어머니가 잉어를 드시고 싶어 하는데 한겨울이라 잉어를 구할 방법이 없는데 갑자기 배 위로 잉어가 한 마리 뛰어 올라 그 잉어를 잡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벌지리 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명정문(命旌 門)은 경주 김씨 문중의 아름다운 효행을 후손들에게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낙동강과 잉어는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 벌지리는 낙동강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강에서 자라는 잉어 역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1929년 다산면 벌지리 986번지에 세워진 정려문(旌閭門)인 명정문(命㫌門)은 다산면 벌지리의 지지재(知知齋, 고령군 향 토문화유산 유형자산 제7호)와 함께 벌지리를 대표하는 유형문화재 중의 하나 이다.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윤태흥(尹泰興)이 정려기(旌閭記)를 지었다. 참고문헌 : 김효자교관공행록(金孝子敎官公行錄),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김치정(金致精) 본관은 일선(一善)이며 자는 자익(子益)이고 호는 지수(芝叟)이다. 김경복(金敬 福)의 아들이자 점필제(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11세손이다. 부친의 병에 변 을 맛보아(嘗糞 : 상분) 병의 차도(差度)를 살폈고 상을 당하여서는 묘소에 여 막(廬幕)을 지어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돌아가 제물(祭物)을 차렸다. 이에 호랑 이가 앞길을 인도하고 꿩과 기러기도 여막(廬幕)에서 길들여졌다. 관에서 쌀과 물품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그의 효행 사실은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개실 마을 도로변에 세워져 있으며 2000년 10월 성주(星州) 이주형(李主衡)이 지은 김씨 오세 효행 사적비(一善金氏 五世 孝行 事蹟碑) 등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김씨 오세 효행 사적비(金氏 五世 孝行 事蹟碑), 고령군의 비(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