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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4 - 세워져 있으며 성주(星州) 이주형(李主衡)이 지은 일선김씨 오세 효행 사적비 (一善金氏 五世 孝行事蹟碑)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일선김씨 오세 효행 사적비(一善金氏 五世 孝行事蹟碑) ●김상능(金相能)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달원(達元)이고 중종 때 사헌부(司憲府) 장령(掌 令)을 지낸 김효동(金孝東)의 후손이며 김호일(金浩一)의 셋째 아들로 순조 34년(1834년) 지금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평소 부모를 극진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칠순의 아버지가 수개월 동안 병이 들어 온갖 약을 써도 효험이 없고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였다. 이에 산속에 들어가 3일 밤낮을 기 도한 끝에 꿩이 저절로 부엌으로 날아들어 와 이를 달여 드리니 효험이 있었 다. 그리고 아버지가 잉어를 먹고 싶어 하여 멀리 떨어진 연천(沿川)에 가서 구해다 드린 후 점차 몸을 회복하여 마침내 회춘(回春)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 1931년 고령의 유생인 최상기(崔尙冀), 임원식(林元植), 이종발(李鐘發) 등이 그의 효행을 기렸다. 그 후 김씨 문중에서 후세(後世)들의 사표(師表)로 삼기 위하여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 정려각(旌閭閣)을 세웠고 방계 혈족인 김보림 (金輔林)이 각기(閣記)를 지었다.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 산 5번지에는 효자(孝 子) 김상능(金相能)과 효부(孝婦) 완산최씨(完山崔氏)의 쌍효각(雙孝閣)이 있다 . 왼쪽의 효자각에는 ‘효자 의성김공 휘상능지려(孝子 義城金公 諱相能之閭)’라 는 현판과 사적이 적힌 작은 현판이 하나 있고, 오른쪽의 효부각에는 ‘효부 학 생 김세유처 유인완산최씨지려(孝婦 学生 金世瑜妻 孺人完山崔氏之閭)’라고 적힌 현판과 사적 등이 기록된 현판 5개가 걸려 있다. 비각은 홍살문으로 닫 혀 있고, 비각의 둘레는 담장이 아닌 낡은 철 구조물이 둘러싸고 있다. 묘소는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에 있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김시사(金是泗) 본관은 일선(一善)며 자는 희도(希道)이고 호는 매암(梅庵)이다. 김이(金彛)의 아들이자 점필제(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7세손이다. 나이 9세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아침•저녁으로 죽을 먹었다. 별도의 나무 그릇과 숟가락을 사용하 고 다른 그릇으로는 먹지 아니하였으며 다른 음식은 먹지 아니하였다. 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