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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3 - ●권중정(權重正)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양여(養汝)이고 호는 이회(二晦)이다. 학문에 힘 을 쓰고 좋은 벗을 사귀었다.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 를 먹여서 수명을 연장하였다. 향촌 사람들이 그의 어진 행실을 일컬어 ‘인후 군자(仁厚君子)’라 칭송하였다. 참고문헌 : 고령군지(1996년) ●김경복(金敬福) 본관은 일선(一善)이며 자는 향지(享之)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 의 10세손이며 아버지는 김문정(金文丁)이다. 어릴 때 부친이 병에 걸려 약 다 리는 것을 부친이 보고 어린 것을 가엾게 여겨 사람들에게 대신하게 했다. 하 지만 그 말을 따르지 않고 하던 일을 고집했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어떤 사람이 학문에 전념하지 않을까 걱정하니 대답하기를,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 이 바로 학문이다. 배우기만 하고 봉양하지 않으면 어디에 학문을 쓰겠는가. ” 라고 하였다. 또한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마시게 하여 5 일 동안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의 효행 기록이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개실마 을 도로변에 세워져 있고 성주(星州) 이주형(李主衡)이 지은 김씨 오세 효행 사적비(一善金氏 五世 孝行事蹟碑) 등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김씨 오세 효행 사적비(金氏 五世 孝行事蹟碑) ●김문정(金文丁) 본관은 일선(一善)이며 자는 몽서(夢瑞)이고 김선명(金善鳴)의 아들이자 점필 제(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9세손이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꿩을 구워 먹고 싶은 생각이 난다고 하니 꿩이 저절로 부엌으로 들어왔다. 또한 잉어가 생각난 다고 하니 잉어가 갑자기 작은 연못에서 나왔으므로 사람들이 그 연못을 ‘이출 지(鯉出地)’라 하였다. 묘소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 동안 죽을 마시며 날마다 묘소에 절을 하였다. 복(服)이 끝났지만 오히려 왕래를 그만두지 않아 저절로 길이 생겼으니 나무꾼과 목동들이 서로 경계하며 ‘효자로(孝子路)’라 하여 감 히 밟지 않았다. 그의 효행 사실은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개실마을 도로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