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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 - 불행하게도 29세의 젊은 나이에 병이 걸려 죽음에 이르렀을 때 눈물을 흘리며 “부모가 집에 계시니 눈을 감을 수 없다”면서 울부짖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937년 5월 아버지가 이질(痢疾)에 걸려 3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온 갖 약을 썼으나 전혀 차도(差度)가 없고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어 느 날 아버지가 잠자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어떤 궁궐로 끌려가 보니 그 곳에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우두머리에게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살려 줄 것 을 간청하자, 우두머리가 “너의 정성이 갸륵하니 아버지를 놓아 주겠노라!”는 말을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 후로 아버지의 병이 점차 차도를 보여 완전히 낫게 되었다. 지난 꿈이 황홀하기 그지없고 몸이 가볍고 정신이 상쾌하여 죽은 지 8시간만에 다시 살아나니 사람들은 죽은 아버지를 살린 효적의 기적(奇績 ) 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은 1941년 개진면 직2리 산133번지 송천마을 입구 도 로변에 옥곡(玉谷) 김희록(金熙祿)이 표갈(表碣)을 지은 ‘효자(孝子) 강병관(姜 炳觀) 기적비(紀蹟碑)’를 세워 그 효행을 기리고 있다. 묘소는 고령군 개진면 송천(松川) 안산(案山)에 있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강하영(姜廈永)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덕노(德老)이고 호는 초강(樵岡)이다. 강규흠(姜奎 欽)의 아들이자 고려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통계(通溪) 강회중 (姜淮仲)의 후예이다. 어버이를 섬기는데 지극히 효도하였다. 일찍이 홍수를 만나던 날 아버지께서 원두막에 계셔서 생사를 판단하기 어려워 허겁지겁 원 두막에 이르니 날은 저물고 물은 깊어 앞길을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 버지를 업고 하늘에 울부짖으니 홀연히 괴상한 불이 앞을 인도하여 불을 따라 육지에 올라왔다. 또 아버지를 위하여 수의(壽衣)를 갖추어 두었는데 항상 도 적이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하였다. 하루는 밤에 도둑이 마을에 들어와 “우리가 비록 무뢰한(無賴漢)이지만 마땅히 효자(孝子)의 집은 침입하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말고 잠자라”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이 모두 신의 도움과 도둑 을 교화(敎化)시킨 기이(奇異)함에 대하여 감탄하였다. 관(官)에서는 쌀과 고기 를 내려주었다. 참고문헌 : 삼강록(187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