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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 - 였다. 만년에 양산훈도(梁山訓導)의 직첩(職牒)을 받아 발탁(拔擢)되었으나 부 모님이 안 계시고 받은 벼슬이라 ‘면훈도장(免訓導狀)’ 즉 훈도(訓導)를 사직 (辭職)함을 장계(狀啓)로 올려 곧 사직(辭職)하였으니 의리(義理)를 소중히 한 처사(處事)이었다. 낙동재(洛東齋)를 지어 고령현감(高靈縣監) 허교(許喬)의 아 들 미수(眉叟) 허목(許穆)과 운계(雲溪) 정홍석(鄭弘錫) 등을 가르치며 후학양성 에 매진하였다. 죽포(竹圃) 이현룡(李見龍), 태허정(太虛亭) 곽홍지(郭弘址), 우 암(愚庵) 최산립(崔山立) 등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나누었다. 강론(講論)과 훈 도(訓導)에 전념하다가 질병을 얻어 인조 15년(1637년) 4월 9일 임종(臨終)하 던 날 나라만 걱정하는 마음으로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제 16대 의종(毅宗)의 연호(年號)인 숭정(崇禎)이란 말을 세 번하고는 집에서 세상을 마치니 향년 6 9 세였다. 이해 10월 29일 고령군 개진면 구곡의 효모산 유좌원(酉坐原)에 안장 (安葬)하였다. 운계(雲溪) 정홍석(鄭弘錫)이 비문(碑文)을 짓고 교리(校理) 김상 목(金相穆)이 행장(行狀)을 지었다. 학양(鶴陽) 박경가(朴慶家), 성재(性齋) 허전 (許傳),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이 문집의 서문(序文)에서 찬술(撰述)한 글을 보면 공의 시(詩)와 문장(文章)은 화려하지 않고 꾸미고 다듬어 수식(修飾)함이 없어 순수한 옛글 모습으로 온화(溫和)하고 담백(澹泊)할 뿐이라고 평하였다 . 유고(遺稿)로 치재문집(癡齋文集)이 전하며 2001년 공의 학행(學行)과 유덕(遺 德)을 기리기 위하여 종중에서 국역치재문집(國譯癡齋文集)을 발간하였다. 권 말(卷末)에는 부록(附錄)으로 스승 같은 벗을 기록한 127명의 명단인 사우록 (師友錄)이 있다. 초취(初娶)는 생원(生員) 추(樞)의 딸인 현풍곽씨(玄風郭氏)이 고 재취(再娶)는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참고문헌 : 치재문집(癡齋文集), 경북을 빛낸 인물, 고령군지(1996년) (5) 효행(孝行)•열행(烈行) ⓵ 효자 ●강병관(姜炳觀)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할아버지는 강상홍(姜相洪)이며 아버지 강기락으로 1901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봉양이 극진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