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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졸년(卒年)은 미상이며 묘소는 정경부인(貞敬夫人) 강릉김씨(江陵金氏)와 함께 고령군 쌍림면 신곡동 산 178 박곡(朴谷) 선고(先考) 계하(階下) 신좌(申坐) 합 분(合墳)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태조실록 『동문선』 권80, 기(記) 상주풍영루기(尙州風詠樓記). ●김내옹(金乃雍)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언화(彦和)이고 호는 둔와(遯窩)이다. 아버지는 성균생원(成均生員)을 지낸 김공(金珙)이며 중종 8년(1513년) 대가야읍 월기촌 에서 태어났다. 중종 35년(1540년) 경자(庚子) 식년(式年) 생원시(生員試)와 진 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한 후 중종 38년(1543년) 계묘(癸卯) 식년(式年) 병 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공이 과거에 급제하자 기재 수옹(守雍)은 동생에게 분 수에 맞게 행동하라고 경계하였는데 평생 명심하고 잊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 해남현감(海南縣監)을 거쳐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지냈으며 은퇴한 후 갈벌(지 금의 문경시 문경읍 갈평리)에서 만년을 보냈다. 의성군 금성면 구련리에 유허 비가 세워져 있다. 평생 맏형인 수옹(守雍)을 따르고 섬기기를 부지런히 하여 사제간(師弟間)과 다름이 없었다. 졸년(卒年)은 미상(未詳)이며 묘는 고령현 서 부서(西部西) 오리(五里) 대권동(大權洞) 묘향원(卯向原)에 있다. 초취(初娶)는 훈도(訓導) 경지(景智)의 딸인 숙부인(淑夫人) 함양박씨(咸陽朴氏)이고 재취(再 娶)는 숙부인(淑夫人)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註) 성균생원(成均生員):소과(小科)에 입격(入格)하여 진사(進士), 생원(生員)이 되면 성균관(成均館)에 입학(入學)할 자격이 생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균관 (成均館)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실 제로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修學)한 사람을 성균생원(成均生員)이라 하였다 . 족보, 비문 등 사적(私的)인 문헌에서 보이나 실록(實錄), 방목(榜目) 등 공식적 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 용어이다. 참고문헌 : 국조문과방목, 경주김씨판도판서공후직장공파보(무자보), 고령대관 (195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