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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 - ●조상(曺塽)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字)는 문보(文甫)이고 호(號)는 봉강(鳳岡)이다. 처사 (處士) 정환(珽煥)과 무헌(武憲)의 딸인 옥산장씨(玉山張氏)사이에서 1876년 7 월 13일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서 태어났다. 공의 나이 10세 때 부친의 명 (命)에 따라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에 대한 뜻을 돈 독히 하고 힘써 실천하여 수제자(首弟子)가 되었으며 스승은 칠조훈(七條訓)인 “입지지대(立志之大), 입심지정(立心之正), 진실심지(眞實心地), 과실필개(過失 必改), 절문근사(切問近思), 독서통투(讀書通透). 변화기질(變化氣質)” 등을 써 주면서 학문적 성취를 격려하였다. 임재(臨齋) 선생이 별세한 후에 전북 부안 군 계화면 계화리 계화도(界火島)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던 조선 후기 기호학파 (畿湖學派)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간재(艮齋) 전우(田愚)에게 제자로 받아 줄 것을 청하며 예폐(禮幣)를 올리고 경의를 표하는 집지(執贄)를 청하는 서신을 올려 1917년 답신(答信)을 받고 42세에 간재(艮齋)의 문하생(門下生)이 되어 성리학의 진원(眞源)을 듣고 경(敬)을 바탕으로 하는 “의리(義理), 실천(實踐) , 극기(克己), 함양(涵養)”에 관한 사조훈(四條訓)을 받아 실천하는데 전력(專力 ) 하였다. 아울러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과 부모가 낳으시고 임금 이 먹이시고 스승이 가르치시니 한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는 ‘생삼사일(生三事 一)’을 강조하였다. 공은 수구론적(守舊論的) 출처의리(出處義理)를 고수하였다 .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상황에서 자신이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숨어 살면서 의 리(義理)를 지키고 도(道)를 전수(傳授)하는 것을 출처의리(出處義理)로 보아 이 러한 자신의 생각을 국화지은일자(菊花之隱逸者)로 비유하였다. 간재(艮齋)가 계화도(界火島)로 들어가 은둔하여 옛 것을 지키면서(去之守舊 거지수구)출처 의리(出處義理)하였던 것과 맥을 같이 하였다. 또한 학문은 자기 수양을 통한 참된 인간의 완성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사 교론(四敎論)’에서 전통적인 유학의 교육내용이었던 시서예락(詩書禮樂)의 공부 에 대하여 강조하고 사교(四敎)를 네 계절에 분속(分屬)시켜 락(樂)은 화창한 소리이니 봄에 마땅하고 시(詩)는 발양(發揚)하는 것이니 여름에 마땅하고 예 (禮)는 닦아서 이루는 방법이니 가을에 마땅하고 서(書)는 거두어 간직하는 것 이니 겨울에 마땅하다는 공부방법을 논하였다. 이러한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독서(讀書)와 궁리(窮理), 역행(力行)의 모든 것을 절차탁마(切磋琢磨 )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공은 율곡(栗谷)과 우암(尤庵)의 심성론(心性 論)을 수호, 발전시킨 간재(艮齋)의 성리설(性理說)을 대변하여 ‘심즉이심성일 물변(心卽理心性一物辨)’이란 글을 통하여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심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