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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5 - 본관은 진양(晋陽)이며 초휘(初諱)는 담(橝)이나 재송(載松)으로 개명(改名)하였 으며 자는 사경(士擎)이다. 당세에 덕망이 높아 사림(士林)의 영수(領袖)로 추 앙(推仰)받았던 아버지 경흥(景興)의 둘째 아들로 인조 23년(1645년)에 태어났 다. 숙종 28년(1702년) 4월 군정(軍丁)의 폐단(弊端)을 시정(是正)할 것을 요구 하는 상소(上疏)를 올려 이를 관철(貫徹)시킨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중 숙종실 록(肅宗實錄)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星州高靈本屬尙州鎭 每習陳 民弊莫甚 성주(星州)와 고령(高靈)은 본래 상주진(尙州鎭)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매번 군사훈련을 하게 되면 백성들의 폐해가 막심하였다. 故公弱冠獨上疏挽兩邑爲獨鎭 공이 약관의 나이에 홀로 상소하여 양읍(兩邑)을 합쳐 하나의 진(鎭)이 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高靈幼學鄭載松等上疏曰 즉 고령(高靈)의 유학(幼學) 정재 송(鄭載松) 등이 상소하기를’ 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여러 명이 함께 상소를 올 린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연명(聯名)으로 올리는 상소에 그 상소를 대표하 는 사람을 제일 먼저 적는 것을 소두(疏頭)라 한다. 집단적으로 상소(上疏)할 때에 소두(疏頭)로 적는 사람은 그 지역 사림(士林) 또는 유림(儒林)중에서 매 우 두터운 명성(名聲)과 인망(人望)을 갖춘 영수(領袖 : 여럿 중의 우두머리)를 선정하므로 가문으로서는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숙종 34년(170 8 년) 고령 문중 최초 파보(派譜)인 무자보(戊子譜)의 서(序)를 근찬(謹撰)하여 족 보 편찬에도 일익(一翼)을 담당하였던 공로가 있었다. 묘는 미산(眉 남쪽 술좌 (戌坐)에 있다. 배위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며 아버지는 후철(後哲)이며 묘는 남편의 왼쪽에 합장되었다(祔左) 註1) 군정(軍政):조선시대 군사(軍事)에 관한 군행정(軍行政)과 군재정(軍財政 ) 의 총칭한다. 註2)산림처사(山林處士):벼슬이나 속세(俗世)를 떠나 산골이나 시골에 파묻혀 글 읽기를 즐기며 지내는 선비를 말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 진양정씨 족보(을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