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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3 - 註) 흡연:대중(大衆)의 의사(意思)가 한 곳으로 쏠리는 정도(程度)가 대단한 모 양을 뜻한다. 참고문헌 : 암서집(巖棲集), 전의이씨 부정공파보(경인보) ● 이기춘(李起春)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자는 계욱(季郁)이고 호는 옥산(玉山)이다. 밀직사(密直 使)를 지낸 언홍(彦洪)의 셋째 아들로 중종 36년(1541년) 태어났다. 어릴 때부 터 성현(聖賢)의 학문을 강구(講究)하였다.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2리 옥산마을 에 옥산정사(玉山精舍)를 구축하고 벗들과 함께 성리학(性理學)을 강마(講磨)하 고 뒤 쪽에 흐르는 맑은 물가 조대(釣臺)에 앉아 석양 노을을 바라보면 고기를 낚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의병(義兵)을 일 으킬 때 아무런 직책이 없이 일개 평민으로 진영(陣營)에 참여(白衣臨陳)하여 부시(賦詩)짓는 것을 부지런히 도왔다. 청휘당(晴暉堂) 이승(李承), 모재(茅齋 ) 이홍우(李弘宇), 한강(寒岡) 정구(鄭逑), 송암(松菴) 김면(金沔), 대암(大庵) 박성 (朴惺)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등 당세명현(當世名賢)과 교분이 두터웠 으며 선조 22년(1589년) 5월 개진면 개산포(開山浦)에서 성산면 사망정(四望 亭)에 이르는 낙동강을 뱃놀이를 하며 만경창파욕모천(萬頃蒼波欲暮天 : 저녁 때 저무는 하늘에 한없이 넓고 푸른 물결) 7자(七字)로 분운(分韻)하여 시를 지 었으니 이들을 낙강칠현(洛江七賢)이라 불렀으며 이들 중 수위(首位)를 차지하 였다. 사망정(四望亭) 곁에는 2003년 5월에 제막된 ‘낙강칠현비(洛江七賢碑)’가 있다. 만(萬) 자운(字韻)으로 지은 공의 시는 아래와 같다. 煙艇泛淸波(연정범청파) / 아득한 작은 배를 청파에 띄우니 良朋來自遠(양붕래자원) / 어질고 친한 벗이 먼곳에서 찾아왔네 誰知今日遊(수지금일유) / 그 누가 알리오 오늘 모여 놀 것을 曾不意千萬(증불의천만)/ 천만 뜻밖이라 나도 미처 몰랐다오 특히 송암(松菴) 김면(金沔)과는 동향(同鄕), 동갑(同甲)이므로 친형제같이 친하 였다. 만년에 장재(張載)의 기철학(氣哲學)을 연구하였다. 선조 30년(1597년 ) 향년 57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금암(琴庵) 고방우(高方 右) 건좌(乾坐)에 있다. 묘갈명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원임(原任) 은대승선(銀臺 承宣) 수동(壽同) 장석신(張錫藎)이 지었다. 헌종 7년(1666년) 사림(士林)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