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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 -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사회(士晦)이고 호는 소금헌(小琴軒)이다. 조선시 대 이조(吏曹)·병조(兵曹)의 정랑(正郞)과 좌랑(佐郞)을 통칭(通稱)하였던 전랑 (銓郞)을 지낸 재숭(在嵩)의 다섯째 아들로 순조 18년(1818년)에 태어났다. 문 음(門蔭)으로 통덕랑(通德郞)을 받았고 천성이 단정하고 엄했으며 재주와 생각 이 뛰어나게 총명하였다. 약관(弱冠)이 되기 전에 경사(經史)와 백가(百家)에 통달하였으며 말을 하면 아름다운 문장이 되며 필체가 정묘하여 손수 책을 베 끼기를 수백권에 이르렀다. 일찍이 합천 가야산에 우거하니 배우러 온 자가 전 국에서 모여들어 이연이라는 학당을 마련하고 문장을 겨루게 했고 또 예제와 경서의 취지를 강론하여 선비들이 서로 깨우쳐 학문을 성취한 자가 많았다. 고 종 10년(1873년) 향년 56세로 졸(卒)하였다. 저서에 세성휘감(世聲彙鑑) 20권 과 문집 5권이 있다. 배위는 진사(進士) 영찬(榮纘)의 딸인 공인(恭人) 청주한 씨(淸州韓氏)이다. 참고문헌 : 세성휘감(世聲彙鑑), 전의이씨 부정공파보(경인보) ●이기로(李基魯)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성종(聖宗)이고 호는 다곡(茶谷)이다. 두남(斗南 ) 종림(種琳)과 상곤(相坤)의 딸인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차남으로 고종 13년(1876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서 태어났다.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 ) 의 삼종질(三從姪)이다. 천품(天稟)이 아름답고 덕성(德性)이 일찍 성취되었다 . 스스로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 선생 문하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학문 이 정심(精深)하고 몸소 실천하는 것이 순고(純固)하며 흡연(翕然)하여 한편으 로 사표(師表)가 되었다. 일제강점기간 동안 서락서당을 확충 중창(重創)하여 장차 나라가 바로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글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게 많은 후 학을 양성했다. 이로써 다산학맥을 더욱 뻗어나게 했으며 일찍이 “소만구(小晩 求)”라 칭하게 되었다. 달성군 화원의 인흥마을에 있는 수봉정사(壽峰精舍)에 서 수봉(壽峰) 문영박(文永樸),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난곡 이건방(蘭谷 李建芳), 백괴(百愧) 우하구(禹夏九) 등 역내(域內)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과 이 곳에서 교유(交遊)하며 경륜(經綸)을 교류(交流)하였다. 1946년 향년 71세로 졸 (卒)하였다.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 산 124-8번지에 있다. 문 집 24권 12책이 세상에 전한다. 배위는 정학(廷鶴)의 딸인 달성배씨(達城裵氏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