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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 - 다. 초취는 고성이씨(固城李氏)이고 재취는 의성김씨(義城金氏)이나 무사(无嗣 ) 로 족자(族子) 종열(鍾烈)을 양자(養子)로 삼았다. 註) 고제(高弟):고족제자(高足弟子)의 준말로 학식(學識)과 품행(品行)이 우수 (優秀)한 제자(弟子)를 일컫는다. 참고문헌 : 송강문집(松岡文集), 고령군지(1996년) ●김영달(金永達)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시언(時彦)이고 호는 고양거사(高陽居士)이다. 통 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감(戡)과 난서(鸞瑞)의 딸인 숙부인(淑夫人) 성산이씨 (星山李氏) 사이에서 선조 2년(1569년) 9월 10일 고령군 대가야읍 월기촌(月器 村)에서 태어났다.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지낸 기재(棄齋) 수옹(守雍) 선생의 증 손(曾孫)이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門人)이다. 15세 때 재능(才能)과 기예(技藝)가 범상(凡常)하지 않다는 명성(名聲)이 멀리 전파되어 매헌(梅軒) 최 여계(崔汝契) 선생이 데려가 조상(祖上)의 학문을 다시 이어 받들도록 하니 지 극한 정성을 공경하여 우러러 사모하였으며 후에 사위로 삼았다. 치헌(恥軒 ) 류세훈(柳世勛), 구주(鷗洲) 강대적(姜大適) 등 인근 지역의 명유(名儒)들과 학 문을 강마(講磨)하고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었다. 학문(學問)이 능달(能達)하 여 사림(士林)이 추중(推重)하였으며 덕행(德行)이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한훤당 (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향사(享祀)하는 ‘도동서원(道東書院) 청금록(靑衿錄) ’ 에 기록되어 있다. 자질(子姪)과 고을의 자제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한편 향약 계(鄕約契)을 만들어 남의 근심을 걱정하고(憂人之憂) 남의 즐거움을 즐거워하 며(樂人之樂)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孝友), 절개와 의리(節義) , 선악(善惡)에 관한 교훈을 규약으로 만들어 향인(鄕人)들에게 가르치고 정성(精 誠)과 신의(信義)로 권면(勸勉)하였다. 광해군 2년(1610년) 내암(來庵) 정인홍 (鄭仁弘)의 외생질(外甥姪)인 박이립(朴而立)이 정인홍(鄭仁弘)의 사주(使嗾)를 받고 한강(寒岡) 선생을 모함(謀陷)하여 무고(無辜)하게 성주옥(星州獄)에 갖히 는 경술지옥(庚戌之獄)이 발생하였을 때 공을 비롯하여 성주(星州) 생원(生員 ) 정준민(鄭俊敏) 등 18제현(諸賢)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풀어 달라고 상소(上 疏)를 하였는데 이를 한강변정(寒岡辨正)이라고 한다. 광해군 6년(1614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