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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 - ●곽식(郭遈)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건숙(健叔)이고 호는 졸옹(拙翁) 또는 지분당(知 分堂)이다. 현종(顯宗) 1년(1660년) 식년(式年)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한 송담 (松潭) 수진(壽)과 독오당(獨梧堂) 협(峽)의 딸 사이에서 효종 6년(1655년) 1 월 23일 태어났다. 송담(松潭) 수진(壽)은 고령 매림서원(梅林書院)에 배향된 은 매헌(梅軒) 수강(壽岡)의 동생이다.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선생과 외조 부(外祖父) 독오당(獨梧堂) 황협(黃峽) 선생으로부터 수학(修學)하여 학문과 도 덕이 높았다. 학문을 서로 높게 보고 숭상하면서 교유(交遊)하였던 사람은 당 대의 명유(名儒)이었던 경암(敬庵) 문동도(文東道), 일암(一庵) 신몽삼(辛夢參) , 퇴계학의 적통을 계승한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셋째 아들인 밀암(密菴 ) 이재(李栽), 곡천(谷川) 김상정(金尙鼎) 등 제현(諸賢)이었으므로 공이 학문이 해박하고 문장이 풍성하여 우뚝하게 석유(碩儒)이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 1930년 발간된 의춘지(宜春誌)에 향인(鄕人)이 “충효출천(忠孝出天), 학문저세 (學問著世) 즉 충효를 천성으로 타고 났으며 학문이 세상에 드러났다 ”라고 평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공의 병이 극심하였는데 숙종(肅宗)의 환후(患候)도 극심 한 것을 알고 벽에 큰 글씨로 쓰기를, “夢魂猶戀闕(몽귀유한궐) 夜夜繞西天(양 야요서천) 즉 넋은 꿈속에서도 대궐을 사모하여 밤마다 서쪽 하늘을 맴도네. ” 라고 하고 곧 운명(殞命)하니 숙종 39년(1713년) 12월 21일에 향년 59세로 졸 (卒)하였다. 묘는 의령군 동면 정곡리 동마산상(東馬山上) 유혈(乳血) 임좌(壬 坐)이다. 묘지명(墓誌銘)은 가선대부(嘉善大夫) 예조참판(禮曹參判) 오광운(吳光 運)이 지었다. 문집(文集)은 있으나 아직 간행(刊行)하지 않았다. 배위는 선무 랑(宣務郞) 사건(思建)의 딸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공은 후사(後嗣)가 없어 생원(生員) 유(逌)의 아들 만한(萬翰)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성호(星湖) 이익 (李翼) 선생이 공자왈(孔子曰) ‘不知其父(부지기부)면 見其子(견기자)하라’ 즉 공자가 말하기를, ‘아비를 모르면 그 자식을 보라.’ 하였는데, 만한(萬翰) 씨로 인해서 거의 이 말을 믿을 수 있게 되어 마침내 행록을 간추려서 행장을 짓는 다고 하였으며 공의 행장(行狀)은 성호선생전집권지육십육(星湖先生全集卷之六 十六)에 ‘졸옹곽씨행장(拙翁郭公行狀)’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의춘지(宜春誌),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 고령군지(1996년) 현풍곽씨 예곡공, 태허정 파보(임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