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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1833년)에 태어났다. 고종 11년(1874년)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 官)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에 올랐다. 1903년 9월 14일 향년 71세로 졸(卒)했 다. 묘는 고령군 성산면 기족리 적등산(赤嶝山) 자좌(子坐)이다. 배위는 병규 (炳奎)의 딸인 숙부인(淑夫人)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참고문헌 : 안동권씨 대동세보(갑신보), 고령군지(1996년) ●권정지(權挺之)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초명(初名)은 가승(佳勝)이고 자는 득첨(得瞻)이다. 호 조참의(戶曹參議)를 지낸 구(懼)와 진사(進士)를 지낸 정동(正東)의 딸인 파평윤 씨(坡平尹氏) 사이에서 중종 26년(1531년)에 태어났다. 명종 3년(1548년) 훈련 원(訓練院) 주부(主簿)가 되고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품(陞品)되었으며 그후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 선조 30년(1597년) 10월 20일 향년 79세로 졸 (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성산면 기족동 뒤 하무등(河武嶝) 계좌(癸坐)이다. 배 위는 군수 재기(在起)의 딸인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참고문헌 : 안동권씨 대동세보(갑신보), 고령군지(1959년) ●금유(琴柔) 본관은 봉화(奉化)이며 호는 청원정(淸遠亭)이다. 아버지는 극해(克諧), 아들은 이영(以詠)이다. 태조 5년(1396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전라도관찰사(全羅道 觀察使), 대사간(大司諫), 대사성(大司成),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하였 다. 조선조 초기에 고령 읍치(邑治) 3리에 거주하였다. 세종 1년(1419년) 강릉 부사(江陵府使)에 임명되어 백성들에게 순리(循吏)라고 칭송받았다. 주요 저서 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영남지리지(嶺南地理誌)가 있다. 작품으로는 대구광역시의 금학루(琴鶴樓)에 영각서풍청(鈴閣署風淸)이라는 시를 남겼다. 생 졸년(生卒年) 미상(未詳)이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