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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 - 선조실록(宣祖實錄) 33권, 동래정씨 참판공파 파보 ● 정유례(鄭有禮) 본관은 진양(晋陽)이며 자는 이보(履甫)이다.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 한 군공 (軍功)으로 병절교위(秉節校尉)의 품계와 부장(部將)을 제수(除授)받았던 아버지 정서(鄭序)와 현감(縣監) 권세경(權世卿)의 딸인 의인(宜人) 안동권씨(安東權氏 )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명종 10년(1555년) 고령군(高靈郡) 대가야읍(大加耶 邑) 월기촌(月器村)에서 태어났다. 진양정씨 족보에는 생년(生年)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용사응모록(龍蛇應募錄)/ 창의록(倡義錄)에 공의 기록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어 이를 원용(援用)하였다.“鄭有禮履甫乙卯居高靈 池內(정유례의 자는 이보이고 을묘생이며 고령 지내에 거주한다)” 공은 담력(膽力)이 뛰어나 고 궁마(弓馬)의 기예(技藝)가 있어 국가를 경영하고 세상을 구제할 큰 뜻을 가졌다. 조선시대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士族)의 명단인 향안(鄕案)을 처음으로 창안(創案)하여 사족 중심의 향촌사회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 다. 임진왜란 때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의병장과 함께 창의(倡義)한 의병명단(義兵名單)인 용사응모록(龍蛇應募錄)/ 창의록(倡義錄)에 기록된 것으 로 보아 처음 고령에서 김면(金沔) 의병장(義兵將)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각종 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송암(松庵) 김면(金沔)이 1593년 3월 11일 금산진중(金山 陳中 : 지금 김천)에서 세상을 떠나자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진영(陣 營)으로 옮겨 의병활동(義兵活動)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임진왜란 때 세 운 전공(戰功)으로 조선시대 정4품 상계(上階) 문신(文臣)의 품계(品階)인 봉정 대부(奉正大夫)와 중국으로 보내는 직물(布), 인삼과 회사품(回賜品)인 의복 및 각종 비단(紗‧羅‧綾‧段)‧포화(布貨)‧물감‧염색‧직조 등의 일을 관장하였던 관청인 제용감(濟用監)의 정3품 관직인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제수(除授)받았다. 졸년(卒年)은 미상(未詳)이며 묘소는 황정산(黃鼎山) 선영(先塋) 아래 건좌(乾 坐)이며 묘갈명(墓碣銘)은 화산(花山) 권용현(權龍鉉)이 지었다. 부인은 현감(縣 監)을 지낸 응평(應平)의 딸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묘는 부묘(夫墓) 좌측에 있다(祔左). 참고문헌 : 진양정씨 족보(을유보), 농산세헌(農山世獻), 용사응모록(龍蛇應募 錄) ●정이례(鄭以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