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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 - 여 마을 뒷산에 개성(拘城)이라는 성을 쌓고 적과 싸울 무기로서 활과 화살촉 을 만드는데 사용하고자 대나무를 심게 되었다. 대나무가 무성해지자 마을 이 름이 대실(竹谷)이라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이 마을은 약 450여 년 전 진주 (晉州) 정극례(鄭克禮)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지금 의 죽곡(竹谷)1리 지역이 대부분이다. 선조 30년(1597년) 10월 19일 졸(卒)하 였다. 조선시대 종이품(從二品)의 문관과 무관에게 주던 품계인 가선대부(嘉善 大夫)에 증직(贈職)된 것으로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증직(贈職)이란 종 친(宗親)이나 종2품 이상 관원의 부모(父母),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 母) 또는 효자(孝子), 충신(忠臣), 학덕(學德)이 현저(顯著)한 사람에게 공(功)이 나 덕(德)을 기리어 나라에서 사후(死後)에 관직과 품계를 추증(追贈)하는 벼슬 로 관직앞에 '증(贈)'자를 붙인다. 따라서 공(公)의 경우에는 효행(孝行)으로 사 후(死後)에 추증(追贈)된 것으로 보인다. 묘는 왕산곡(王山谷) 경좌(庚坐)에 있 다. 부인은 숙인(淑人) 안동권씨(安東權氏)로 명종 3년(1548년) 7월 7일에 태 어나서 광해 2년(1610년) 6월 3일 졸(卒)하였으며 묘는 쌍분(雙墳)으로 묘갈(墓 碣)이 있고 성산(星山) 이기윤(李基允)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 註1) 죽곡(竹谷) 동명 유래 : 죽곡(竹谷)은 낙동강을 끼고 금호강과 합류하는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신라시대 가락국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마을 뒷산에 개성(拘城)이라는 성을 쌓고 적과 싸울 무기로서 활과 화살촉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자 대나무를 심게 되었다. 대나무가 무성해지자 마을 이름이 대실 [竹谷]이라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이 마을은 약 450여 년 전 진주(晉州) 정극 례(鄭克禮)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지금의 죽곡(竹 谷)1리 지역이 대부분이다. 註2) 증직(贈職) : 종친(宗親)이나 종2품 이상 관원의 부모(父母), 조부모(祖父 母), 증조부모(曾祖父母) 또는 효자(孝子), 충신(忠臣), 학덕(學德)이 현저(顯著 ) 한 사람에게 공(功)이나 덕(德)을 기리어 나라에서 사후(死後)에 관직과 품계를 추증(追贈)하는 벼슬로 관직 앞에 '증(贈)'자를 붙인다. 참고문헌 : 진양정씨 세보, 농산세헌(農山世獻), 용사응모록(龍蛇應募錄) ●정상례(鄭尙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