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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 - 토벌(討伐)한 혁공(赫功)으로 양무원종2등공신(揚武原從二等功臣)의 녹훈(錄勳 ) 되고 통덕랑(通德郞)을 제수(除授)받았다. 영조 27년(1751년) 향년 58세로 졸 (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 산 31-1번지 선고(先考) 묘계하(墓階 下) 임좌(壬坐)에 있다. 공의 후손들이 2011년 10월 ‘양무원종2등공신(揚武原 從二等功臣) 통덕랑(通德郞) 여주이공(驪州李公) 휘 선태(宣泰) 현창비(顯彰碑 ) ’를 세워 공의 전공(戰功)과 유덕(遺德)을 기리고 있다. 비문(碑文)은 후손인 송 백(松柏) 동훈(東勳)이 지었다. 배위는 명부(命敷)의 딸인 남평문씨(南平文氏)이 다. 참고문헌 : 양무원종공신록(揚武原從功臣錄), 여주이씨 문순공파 세보(병신보) ●이정웅(李廷熊)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자는 덕수(德叟)이고 호는 동주(東州)이다. 훈련원(訓練 院) 봉사(奉事)를 지낸 영숙(永淑)의 아들로 선조 27년(1594년)에 태어났다. 성 품이 청백하고 시서에 능하여 구군훈도(九郡訓導)를 역임하면서 많은 선비를 가르쳤는데 인조 14년(1636년) 12월부터 때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왕 이 남한산성으로 피했으나 산성이 무너지고 왕이 삼전도(三田渡)에서 청나라 태종(太宗)에게 치욕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울분을 못이겨 그 자리에서 기 절을 하고 집에 돌아와 문을 잠그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자 세인들이 숭정처 사(崇禎處士)라 불렀으며 현종 3년(1662년) 3월 9일 향년 69세로 조용히 자결 (自決)을 했는데 세상사람들이 절의사(節義士)라 칭하였다. 묘는 개진면 반운동 독산(獨山) 남록(南麓) 간좌(艮坐)에 있다. 배위는 석주(錫疇)의 딸인 단인(端 人)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註) 숭정처사(崇禎處士):숭정(崇禎)이란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인데, 명나라가 망한 뒤 청나라를 거부하고 세상과 인연을 끊고 백이숙제(伯夷叔齊)처럼 살겠 다는 의로운 선비 즉 청절지사(淸節之士)들을 일컬어 '승정처사(崇禎處士)'라 했다. ●이천령(李千齡)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인수(仁叟)이고 일명 사령(士齡)이라 한다. 증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