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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 - (山名)을 삼아 종전 상원산(上元山)을 미숭산(美崇山)으로 고쳐 불렀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용2리 산 39-1번지 해좌(亥坐)에 있으며 묘비명(墓碑銘)은 통훈 대부(通訓大夫) 장기현감(長鬐縣監)을 지낸 동종(同宗) 매구(邁久)가 근찬(謹撰 ) 하였다. 미숭산성에 남아 있는 유적을 살펴보면 동문(東門), 서문(西門), 남문 (南門), 소서문(小西門) 등 4문(四門)을 비롯하여 여조회복(麗朝回復)을 천지신 명(天地神明)에게 축원했던 ‘망향대(望鄕臺)’, 안동장군과 병사가 기마전투(騎馬 戰鬪) 연습을 하였던 ‘주마대(走馬臺)’, 안동장군께서 쏜 화살이 월광사(月光寺 ) 석탑(石塔)에 도달하면 “딸깍”하고 소리를 내는 바위인 ‘달각암(達覺岩)’, 군사 훈련장인 ‘연병장(練兵場)’, 장병해산시 병기(兵器)를 묻었던 ‘갑검릉(甲劍陵)’ , 안동장군의 활과 화살을 묻었던 장궁구(藏弓丘), 안동장군을 따르던 장병 7명 이 떨어져 죽었던 ‘순사암(殉死岩)’, 매년 한식절(寒食節)과 중양절(重陽節)에 지역민이 공을 수호신(守護神)으로 삼고 봉향(奉享)하였던 미숭신사(美崇神祠 ) 등 20여곳에 산재(散在)해 있다. 미숭산성(美崇山城)은 행정구역상 경남 합천 군 야로면 하빈리 산 32번지에 위치하며 성둘레는 1.45km이며 넓이는 45,81 8 ㎡(13,859평)이며 해발 755m이며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으로 축조(築造)되었 으며 1983년 12월 20일 경남 기념물 제 67호로 지정되었다. 방랑시인(放浪詩 人) 난고(蘭皐) 김삿갓 일명 김병연(金炳淵)이 미숭산(美崇山) 망향대(望鄕臺)에 올라 “영남술회(嶺南述懷)”와 “등망향대(登望鄕臺) 유감(有感)“이란 2편의 시를 지어 공의 영웅적(英雄的)인 삶을 기렸으며 한국유림을 대표하였던 대유학자 (大儒學者)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미숭성(美崇城)”이란 회고시(懷古詩 ) 를 지어 천추의열(千秋義烈)을 기렸다, 공은 부정(不正)과 불의(不義)에 항전(抗 戰)하여 난세(亂世)에 청고(淸高)한 지절(志節)을 지켰으니 어찌 사육신(死六臣 ) 의 정충대절(精忠大節)인들 비견(比肩)할 수 있으랴.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합천군편, 불복신벌정록(不服 臣罰定錄), 고령현지(高靈縣誌), 경북인물사전(2016년), 대동절의록 ●이선태(李宣泰)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방언(邦彦)이고 호는 매호(梅湖)이다. 처사(處士 ) 죽암(竹巖) 상국(相國)과 현립(顯立)의 딸인 경주최씨(慶州崔氏) 사이에서 숙종 20년(1694년) 태어났다. 영조 4년(1728년) 무신년(戊申年)에 이인좌(李麟佐)의 난(亂)이 일어나자 향병(鄕兵)을 이끌고 동년(同年) 4월 3일 거창의 성초역(省 草驛)에서 진주영장(晉州營將) 이석복(李碩復)과 함께 정희량(鄭希亮)의 군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