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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 - 송암(松菴) 김면(金沔) 장군 휘하에서 창의(倡義)에 동참(同參)하였다. 동길(東 吉)은 군관(軍官)으로 종군(從軍)하여 금산(金山), 개령(開寧), 죽현(竹峴) 전투 등에서 군공(軍功)을 세웠으며 송암(松菴) 김면(金沔) 장군이 전염병을 만나자 강대익(姜大翼), 류보춘(柳報春)과 함께 마음과 힘을 다하여 도리(道理)를 다하 였으며 선조 27년(1594년) 별시(別試)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진위장군(振威 將軍) 행(行) 훈련원(訓練院) 봉사(奉事)를 지냈다. 부자(父子)가 임진왜란을 당 하여 창의기병(倡義起兵)하면서 진충보국(盡忠報國)한 것은 희귀(稀貴)한 사례 (事例)로 세인(世人)들의 추중(推重)받았다. 공은 혼인으로 인하여 고령군 대가 야읍 관동(館洞)에서 1585년경 내상리(內上里)로 옮겨 살아 성산이씨(星山李 氏) 고령(高靈) 내곡파(內谷派)의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묘는 고령군 대가야 읍 내곡리 모전(茅田) 자좌원(子坐原)에 있다고 하나 묘의 차례가 분명하지 않 아(兆次難) 후손들이 설단(設壇)하였으며 비명(碑銘)은 방손(傍孫) 성훈(星勳)이 삼가 지었다. 후손들이 1973년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 문산재(文山齋)를 건 립하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득춘(得春)과 봉사공(奉事公) 동길(東吉)의 유덕(遺德)을 기리고 있다. 註) 아림(娥林) 고령김씨 시조 김남득(金南得)이 나라로부터 풍해(風害), 수해(水害), 한해(旱 害) 등 삼재(三災)가 없는 사패지(賜牌地)를 받고 정착하면서 안림천 변의 수목 이 울창하고 물이 깊고 맑으며 숲이 아름다워 아림(娥林)이라 하였다. 후에 제 방 가의 숲이 바람을 막아주어 마을을 평안하게 한다 하여 안림(安林)으로 바 뀌었다. 참고문헌 : 성산이씨세보(戊子譜 : 2004년), 송암선생유고, 임계별록 임난창의동고록 ●이미숭(李美崇)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호는 반곡(盤谷)이다. 홍건적(紅巾賊)을 평정(平定)하여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제수(除授)된 아버지 언(彦)과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낸 윤(允)의 딸인 어머니 평강채씨(平康蔡氏) 사이에서 충목왕 2년(1346년 ) 외동아들로 개경(開京)에서 태어났다.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鄭夢 周)의 문인(門人)이다. 고조(高祖) 규보(奎報)는 수태보(守太保) 금자광록대부 (金紫光祿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고려 최고의 문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