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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 - 다툴 만한 일월쟁광(日月爭光)이라고 칭찬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조정 에서는 선조 38년(1605년) 좌명대신(佐命大臣)들이 포천(褒薦)하여 공에게 병 조참판(兵曹參判)을 증직(贈職)하고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卷)에 ‘이 등공신(二等功臣) 박대복(朴大福) 주부(主簿)’라고 기록하였다. 박곡(朴谷)이란 공의 전공녹봉하사지명(戰功祿俸下賜地名)이기에 후인들이 붙인 이름이며 ‘왜 갈항(倭竭項)’ 또는 속칭(俗稱) ‘왜갈목(倭竭목)’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격멸(擊 滅)한 피눈물어린 전적지(戰迹地)이므로 후인(後人)들이 붙인 이름이다. 공의 묘소는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 선영 아래에 해좌원(亥坐原)에 있으며 진사(進 士) 여산(礪山) 송시망(宋時望)이 행장(行狀)을 지었고 집안의 후손 박성제(朴 聖濟)가 전기(傳記)를 지었으며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가 묘비명을 지 었고 진와(進窩) 이헌주(李憲柱)가 후찬(後撰)하였다. 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 손들은 공의 전승지(戰勝地)인 ‘왜갈항(倭竭項)’ 또는 속칭(俗稱) ‘왜갈목(倭竭 목)’에 1987년 전승전적비(戰勝戰績碑)를 세워 위훈(偉勳)을 기리며 매년 4월 5일 청명절(淸明節)에 향사(享祀)를 드린다. 후손들은 고령군 덕곡면 본리리 인 곡에 1991년 문학박사 서수생(徐首生)이 근찬(謹撰)한 병조참판운암밀성박공신 도비(兵曹參判雲庵密城朴公神道碑)를 세웠고 1994년에는 재실(齋室)인 운암정 (雲庵亭) 건립하여 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 정신을 기리고 있다. 배위는 참봉 (參奉) 숙(淑)의 딸인 정부인(貞夫人) 성산배씨(星山裵氏)이다. 참고문헌 : 용사응모록(龍蛇應募錄), 송암문집(松庵文集), 임진란위훈록 Ⅲ 병조참판운암밀성박공신도비(兵曹參判雲庵密城朴公神道碑) 비문 ●박산립(朴山立)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증직 받은 자의(子儀)와 증숙부 인(贈淑夫人) 신천강씨(信川康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 어나자 처부(妻父)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창의(倡義)하자 동심기의(同心起義 ) 하여 만은 전공(戰功)을 세워 선무원종2등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에 녹훈(錄勳 ) 되고 훈련원(訓練院) 주부(主簿)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졸(卒)하였다. 몰년(沒年)은 미상이며 묘는 실전(失傳)되었다. 배위는 병조판서 (兵曹判書)를 증직받은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 송암(松菴) 김면(金沔)의 딸인 의인(宜人) 고령김씨(高靈金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