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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 - (仲孫)의 딸인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명종 4년(1549년) 2월 3일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量田里)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천자(天資)가 영민(英敏)하 였으며 사우(師友)와 더불어 문학을 탁마(琢磨)하여 효렴(孝廉)으로 장사랑(將 仕郞) 순능참봉(順陵參奉)을 제수(除授)받았고 임진왜란 때에는 백형(伯兄)인 송암(松菴) 면(沔)을 따라 창의(倡義)하고 힘껏 도와 여러 곳의 전투에서 이겨 공을 세웠고 송암(松菴)이 진중(陣中)에서 순절(殉節)하자 유지(遺志)를 받들어 계속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선조 30년(1597년) 9월 25일부터 9월 29일까지 안 음현(安陰縣 : 지금 경남 함양)의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안 음현감 곽준(郭逡)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와 더불어 순절(殉節)하였다 .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의 예(例)로 자헌대부(資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 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로 추증(追贈)되었다. 묘는 고령군 개진면 직동 (直洞) 뒷산 임좌(壬坐)에 있고 배위는 승의랑(承議郞) 영릉참봉(英陵參奉)의 딸인 정부인(貞夫人) 선산김씨(善山金氏)로 합폄(合窆)이다. 참고문헌 : 임진란 구국공신 의병도대장 김면장군, 고령김씨족보(갑술보), ●도우(都遇)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자는 군길(君吉)이고 호는 사촌(沙村)이다. 훈련원(訓練 院) 봉사(奉事)를 지낸 응기(應祺)와 잔사(進士)를 지낸 은(訔)의 딸인 성산이씨 (星山李氏)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났고 기린도찰방(麒麟道察訪)을 지냈다 . 임진왜란 때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장군과 함께 의병(義兵)으로 활약 했던 기록을 적은 용사응모록(龍蛇應募錄)중 창의록(倡義錄)에 그 이름이 입록 (入錄)되어 있으며 거주지는 자신의 자와 같이 사촌(沙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 15세 은(誾) 이후로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세거하다가 21세 선징(善徵 대 에 합천(陜川) 초계(草溪)로 옮겨 갔다. 성주도씨(星州都氏) 에빈경공파(禮賓卿 公派) 언충(彦忠) 후손이다. 참고문헌 : 성주도씨 대동보, 용사응모록(龍蛇應募錄)중 창의록(倡義錄) ●박대복(朴大福)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자성(子誠)이고 호는 운암(雲庵)이다. 아버지 고 양당(高陽堂) 통덕랑(通德郞) 행(行) 병조정랑(兵曹正郞) 아버지 중손(仲孫)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