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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 - 없어 무후(无後)이며 여타(餘他)는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임진란 구국공신 의병도대장 김면장군, 임진동고록(壬辰同苦錄), 고령김씨족보(갑술보), ●김홍원(金弘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풍암(楓菴)이다. 사림(士林)의 추중(推重)을 받았 던 대학유(大學儒) 송계(松溪) 길(洁)과 군수 준(遵)의 딸인 창녕성씨(昌寧成氏 ) 사이에서 차남으로 선조 7년(1574년) 현재의 고령군 쌍림면 양전리에서 태어 났으며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 송암(松菴) 김면(金沔)의 재종질(再從姪)이다 . 방년(芳年) 19세에 임진왜란을 당하여 재종숙(再從叔) 송암(松菴)을 따라 창의 (倡義)하였으며 1593년 3월 11일 금산진중(金山陳中 : 지금 김천)에서 송암(松 菴)이 향년 53세로 순사(殉死)하자 통분(痛憤)을 금치 못하고 송암(松菴)을 대 신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7년간에 걸쳐 혈전(血戰)을 하면서 크게 군공(軍功)을 세웠다. 난이 평정(平定)된 후에 선조 38년(1605년) 4월 16일 선무원종공신1등 (宣武原從功臣一等)에 녹훈(錄勳)되고 조선시대 오위(五衛)에 두었던 종삼품(從 三品) 서반 무관직인 대호군(大護軍)으로 제수(除授)되었지만 나아가서 벼슬할 뜻이 없어 호연(浩然)히 귀향하여 예전부터 해 온 구업(舊業)만을 다스렸다. 선 조 33년(1600년) 득년(得年)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칠동(七洞) 산 23의 20번지 선영하(先塋下) 신좌원(辛坐原)에 있으며 2014년 12월 13일 충남 보령시 성주리 호국사(護國寺)에 위패를 봉안 (奉安)하였다. 배위는 참봉(參奉) 륜(崙)의 딸인 숙부인(淑夫人) 현풍곽씨(玄風 郭氏)로 부덕(婦德)이 높고 군자의 가문을 이었다. 임난창의동고록(壬亂倡義同 苦錄)의 기록에 의거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친족의사(親族義士) 8명과 송 암(松菴)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친동생 회(會)와 재종제(再從弟) 연(演)과 양(瀁 ) 은 의병 조직에서 조군(調軍)의 직책을 맡았고 재종질(再從姪) 홍한(弘漢) 장군 은 송암(松菴) 진영(陣營)의 선봉장(先鋒將)으로 초계(草溪) 마진(馬津), 함안(咸 安) 죽현(竹峴) 등지에서 누차(屢次)에 걸쳐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고 6월 18일경 낙동강을 통과하던 왜선 2척을 발견하여 공격한 2차 무계전투(二次 茂 溪戰鬪)에 참전(參戰)하여 순사(殉死)하였다. 재종형(再從兄) 급(汲), 재종제(再 從弟) 함(涵), 12촌 동생 성(誠)도 창의(倡義)에 동참(同參)하여 전공(戰功)을 세 웠다. 임진왜란 7년간 각종 전투에 참전하여 혁공(赫功)을 세운 홍원(弘遠)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