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page

- 169 - 있고, 충의를 포상하고 장려하는 은전에 흠이 없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 몇 사람의 본분은 처음부터 보태거나 더는 것이 없지만, 국가를 위해 장구하게 염 려한다면 어찌 하나의 흠이 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엎드려 원컨대, 전하 께서 공의(公議)를 널리 모아 이 몇 사람을 우대하고 장려하여 충의의 기풍을 자라게 한다면, 한 도의 다행이며 국가의 다행일 것입니다. 신 또한 일찍이 의 병에 종사하여 그 말이 이와 같으니, 진실로 사심이 있다는 혐의에 관계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작은 혐의를 피하고자 하여 전하에게 실정 을 숨김이 있다면, 평소 충정을 드러내는 마음을 스스로 저버리게 되어 도리어 불충한 자가 될 것입니다. 진실로 신의 말이 미천한 자의 소견으로 채택된다 면, 비록 상주목사로 임명하는 명에는 달려갈 수 없지만, 한 고을에 부임하여 쇠잔한 백성을 길러 전하에게 보답하는 것은 작은 것이고, 한 나라를 위해 시 무(時務)를 아뢰어 전하에게 충성하는 것은 큰 것이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 건대, 전하께서는 이점을 잘 살피십시오. 신은 지극히 감격하고 절실하여 두려 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아룁니다.” 그후 현풍현 감(玄風縣監), 산음현감(山陰縣監), 면천군수(沔川郡守), 철원 현감(鐵原縣監)를 거쳐 좌승지(左承旨)에 승수(陞授)되었다.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追贈)되었 다. 묘는 초계(草溪) 박곡촌(朴谷村) 서쪽에 있으며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 이 비갈(碑碣)을 지었다. 초취(初娶)는 순석(順錫)의 딸인 정부인(貞夫人) 선산 김씨(善山金氏)이며 재취(再娶)는 헌(憲)의 딸인 정부인(貞夫人) 동래정씨(東萊 鄭氏)로 묘는 고령 상가곡(上佳谷)에 있다. 註)승수(陞授):벼슬의 품계(品階)를 올려 제수함 참고문헌 : 서흥김씨 대동보, 송암선생유고(松菴先生遺稿) 권지이(卷之二) ●김함(金涵)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성원(星源)이다. 선교랑(宣敎郞) 부사과(副司果)을 지낸 내문(乃文)과 영우(永佑)의 딸인 의인(宜人) 완산이씨(完山李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중종 34년(1539년) 현재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量田里)에서 태어 나셨다. 임진왜란 때에는 재종제(再從弟)인 송암(松菴) 면(沔)을 따라 창의(倡 義)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고 임진동고록(壬辰同苦錄)에 기록되어 있다. 벼슬 은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 선조 29년(1596년)에 돌아가셨다. 묘는 고령 군 개진면 송천(松川) 시질(時秩) 안산 (案山) 신좌(辛坐)에 있다. 후사(後嗣)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