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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 - 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使)로 추서(追敍)되었다. 공을 배향하기 위하여 고령군 쌍림면 고곡동 26번지에 세운 도암서원(道巖書院)과 묘소(墓所), 신도비(神道 碑)는 1988년 경북지방문화재(慶北地方文化財) 제76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역사 속에 잃어버렸던 공의 전공(戰功)과 위망(威望)이 2013년 중학교 각종 교 과서에 수록됨으로써 현양(顯揚)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 송암실기(松庵實記), 송암유고(松庵遺稿) ●김성(金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효원(孝源)이다. 주부(主簿)를 지낸 아버지 응규 (應奎)와 군수(郡守)를 지낸 맹통(孟通)의 딸인 의인(宜人) 낙안오씨(樂安吳氏 ) 사이에서 장남으로 중종 38년(1543년) 3월 6일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에는 1 2 촌 형인 송암(松菴) 면(沔)을 따라 창의(倡義)에 보익(輔翼)하고 송암진중(松菴 陣中)에서 군공(軍功)을 세워 충순위(忠順衛)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제수(除授 ) 받았다. 선조 27년(1594년) 1월 2일에 졸(卒)하였다. 전사(戰死)한 날 시신(屍 身)을 찾지 못하여 초혼장(招魂葬)으로 옥구군 옥산면 남애리 산14번지 고(考 ) 계하(階下)에 설단봉사(設壇奉祀)하였다. 공과 초취(初娶) 안동김씨(安東金氏)와 재취(再娶) 전주이씨(全州李氏) 3위 모두 묘가 실전(失傳)이다. 대구 망우당공 원의 임란호국영남충의단과 호국사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참고문헌 : 임진란 구국공신 의병도대장 김면장군, 고령김씨족보(갑술보), 임진 창의시동고록(壬辰倡義時同苦錄) ●김양(金瀁)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유원(裕源)이다. 용양위(龍驤衛) 부장(部將)을 지 낸 아버지 두문(斗文)과 밀양부사(密陽府使)를 지낸 우(雨)의 딸인 의인(宜人 ) 남원김씨(南原金氏)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명종 5년(1550년) 태어났다. 임진왜 란 때 재종형(再從兄)인 송암(松菴) 면(沔)을 따라 창의(倡義)하였으며 진중(陣 中)에서 보익(輔翼)한 공이 많아 통정대부(通政大夫) 장예원(掌隸院) 판결사(判 決事)로 제수(除授)되었으며 선조 30년(1597년) 8월 16일에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칠동 유좌(酉坐)에 있고 배위는 진사(進士) 홍영(鴻泳)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