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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형백(瑩伯)이고 호는 낙전당(樂全堂)이다. 적성현 감(積城縣監)을 지낸 지형(之馨)과 판윤(判尹) 선(銑)의 딸인 파평윤씨(坡平尹 氏) 사이에서 광해군 9년(1617년) 태어났다. 효종 2년(1651년) 식년(式年) 생원 시(生員試)에 입격(入格)하였으며 효우(孝友)가 출천(出天)하였다. 숙종 6년 (1680년) 향년 64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옹점촌(瓮店村) 유좌(酉坐)에 있다 . 초취(初娶)는 참판(參判) 빈(賓)의 딸인 순천김씨(順天金氏)이고 재취(再娶)는 첨지(僉知) 경(坰)의 딸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참고문헌 : 신묘식년사마방목(辛卯式年司馬榜目), 전의이씨 부정공파보(경인보 ) ●이회근(李晦根)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현보(顯甫)이며 호는 수백당(守白堂)이다. 사유(思 遊)의 장남으로 영조 4년(1728년) 12월 27일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태어 났다. 일찍이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과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선생 문하 에서 수업하여 문장을 일찌감치 깨쳤다. 6대손 춘희(春熙)가 쓴 가장(家狀)에 의하면 10세 이전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독파(讀破)하였는데 특히 주역(駐驛 ) 에 통달했다고 한다. 27세 때인 영조(英祖) 30년(1754) 갑술(甲戌) 증광(增廣 )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하였다. 영조 48년(1772년)에 한방윤(韓邦胤)이 고 령김씨 문중의 서책이 보관되어 있는 상자에서 김면(金沔)의 시문과 일기를 발 견, 이를 최재억(崔載億)과 공이 『제선생유집급문견신록(諸先生遺集及聞見新 錄)』에 수록하여 후손들이 정조 9년(1785년) 이를 보충하여 송암실기(松庵實 紀)를 편집, 간행하였다. 고령 유생(儒生) 대표로 고령향교(高靈鄕校) 이전(移 轉) 정문(呈文)을 지었다. 향리(鄕里) 직동(直洞)에 직양재(直養齋)와 고령읍치 (高靈邑治)내에 미산서당(眉山書堂)에서 많은 후학(後學)을 가르쳤다. 저서로 수백당유고(守白堂遺稿) 2권이 전하는데 609제(題) 640수의 시문(詩文)이 실려 있다. 순조 9년(1809년) 7월 22일 향년 82세로 졸(卒)하였다. 배위는 문재(文 再)의 딸인 순흥안씨(順興安氏)로 묘는 개진면 직동 사례(舍禮) 선영 오른쪽 병 좌(丙坐)에 공과 쌍분(雙墳)이다. 참고문헌 : 숭정3갑술증광사마방목(崇禎三甲戌增廣司馬榜目), 청천 신유한의 문인들과 그 문학적 성향, 경주이씨 대동보(기미보) ●정준민(鄭俊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