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page

- 156 - 오건(吳健), 최영경(崔永慶) 등과 사귀며 학문을 논하였다. 선조 15년(1582년 ) 9월 7일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성산면 고탄 재궁동 선고비(先考妣) 동반 (東畔) 간좌(艮坐)에 있다. 숙종 4년(1678년)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에 배 향되었다. 배위는 주부(主簿)를 지낸 은(垠)의 딸인 의인(宜人) 성주배씨(星州裵 氏)이다. 참고문헌 :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광산이씨 한림공 영남파 족보(신묘보), 고령대관(1959년) ●이홍량(李弘量)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중용(仲容)이고 호는 육일헌(六一軒)이다. 훈련원 (訓練院) 봉사(奉事)를 지낸 수(樹)와 의정부(議政府) 사인(舍人) 우(佑)의 딸인 안인(安人) 고성이씨(固城李氏) 사이에서 백형 홍기(弘器)와 함께 중종 26년 (1531년) 태어났다. 선조 1년(1568년) 증광(增廣)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 ) 하여 유일(遺逸)로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불취(不就)하였다 . 옥산(玉山) 이기춘(李基春), 청휘당(晴暉堂) 이승(李承), 모재(茅齋) 이홍우(李弘 宇), 한강(寒岡) 정구(鄭逑), 송암(松菴) 김면(金沔), 대암(大庵) 박성(朴惺) 육일 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등 당세명현(當世名賢)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선조 22년(1589년) 5월 개진면 개산포(開山浦)에서 성산면 사망정(四望亭)에 이르는 낙동강을 뱃놀이를 하며 만경창파욕모천(萬頃蒼波欲暮天 : 저녁 때 저무는 하 늘에 한없이 넓고 푸른 물결) 7자(七字)로 분운(分韻)하여 시를 지었으니 이들 을 낙강칠현(洛江七賢)이라 불렀으며 사망정(四望亭) 곁에는 2003년 5월에 제 막된 ‘낙강칠현비(洛江七賢碑)’가 있다. 선조 25년(1592년)11월 8일 향년 62세 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성산면 고탄 재궁동 선고비(先考妣) 서반(西畔 ) 간좌(艮坐)에 있다. 초취(初娶)는 참봉(參奉) 백행(伯行)의 딸인 의인(宜人) 광 주이씨(廣州李氏)이며 재취(再娶)는 충의위(忠義衛) 양(讓)의 딸인 완산이씨(完 山李氏)이다. 참고문헌 : 융경2년무진사마방목(隆慶二年戊辰司馬榜目), 광산이씨 한림공 영 남파 족보(신묘보), 고령대관(1959년) ●이환(李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