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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 ●이재형(李在衡)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명서(明瑞)이고 호는 강재(江齋)이다. 다산이학 (茶山理學)을 창시한 벽재(碧齋) 규운(奎運)과 명화(命和)의 딸인 한산이씨(韓山 李氏) 사이에서 영조 43년(1767년) 태어났다. 순조 13년(1813년) 증광(增廣)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되었다. 문장과 덕망이 당대 사림의 본보기가 되었 다. 문집이 있다. 헌종 2년(1836년) 향년 70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다 산면 벌지리 방밀동 내곡 계좌(癸坐)에 있다. 배위는 필언(必彦)의 딸인 안동권 씨(安東權氏)이다. 참고문헌 : 숭정기원후186년계유왕대비전보령6순상후평복왕세자책례왕대비전 보령주갑합4경경과증광사마방목(崇禎紀元後百八十六年癸酉王大 妃殿寶齡六旬上候平復王世子冊禮王大妃殿寶齡周甲合四慶慶科增 廣司馬榜目), 전의이씨 부정공파보(경인보) ●이재훤(李在翧)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초명은 재수(在秀)이고 자는 장도(章道)이고 호는 오려 (吾廬)이다. 유생(儒生) 규문(奎文)과 정택(鼎宅)의 딸인 여주이씨(驪州李氏) 사 이에서 정조 4년(1780년)에 태어났다. 순조 28년(1828년) 식년(式年) 진사시 (進士試)에 입격(入格)하였다. 풍채가 훤칠하고 문장이 넉넉하였으며 깨끗한 인 품으로 명망이 있었다. 도백(道伯)이 천거(薦擧)하여 말하기를 “화국문장(華國 文章) 간세영걸(間世英桀) 즉 나라를 빛내는 문장이고 여러 세대를 통하여 드 물게 나는 영웅호걸”이라 했고 어사(御使)가 계주(啓奏)하기를 ”박학독행(博學 篤行) 긍식향방(矜式鄕邦) 즉 널리 배우되 행실(行實)을 독실(篤實)하게 하여 고을과 나라에서 공경하여 본받았다.“라고 하였다. 저서로 가범기애록(家範畸 崖錄), 천산지(天山誌) 등과 문집이 있다. 헌종 10년(1844년) 향년 65세로 졸 (卒)하였다. 묘는 궁구당 종중묘원에 있다. 배위는 양운(陽運)의 딸인 광주이씨 (廣州李氏)이다. 註) 계주(啓奏):조선 시대에, 신하가 글로 임금에게 아뢰던 일 참고문헌 : 숭정기원후4무자식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戊子式司馬榜目), 전의이